브람스(오른쪽)와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쓴 ‘우국’의 일부를 베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우국’을 번역한 김후란의 문장을 베낀 것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에서는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김후란은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부분을 다소 밋밋하게 생각했다. 시적인 표현으로 다듬어 보았다.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부분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로 바꾸었다. 성적인 욕망을 훨씬 더 생기있게 표현한 문장이 됐다. 신경숙은 ‘전설’에서 이 문장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부는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일부는 차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클래식 역사에도 표절 논란으로 소송까지 간 사례가 있었다. 1869년 독일 베를린에 있는 출판사 짐록에서 펴낸 춤곡집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헝가리 춤곡(Hungrian Dances)’ 제1집과 제2집이었다. 리듬이 발랄하고 생기가 넘치며 색채가 풍부한 춤곡들이었다. 그 당시 독일 중산층 가정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함께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헝가리 춤곡’도 시대의 유행에 맞춰 피아노 연탄용으로 작곡되었다. 연탄(聯彈)은 이탈리아어 ‘콰트로 마니(Quatro mani : 손이 네 개라는 의미)’를 번역한 것이다. 즉 ‘네 개의 손’이 함께 연주를 한다는 것이다. <헝가리 춤곡> 중 특히 제1번, 제5번 및 제6번이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각지에서 연주되고 여러 가지 악기로 편곡되었다. 작곡가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브람스(Brahms)였다.

‘헝가리 춤곡’ 악보가 출판되자,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트인 레메니(Remenyi)가 발끈했다. 브람스를 저작권침해로 고소했다. “브람스가 내 아이디어를 훔쳤어. 이건 표절이야”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2세의 레메니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 19세의 브람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1853년 봄부터 독일 각처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 브람스는 피아노를 쳤고, 레메니는 바이올린을 켰다. 브람스는 음악 여행을 다니면서 레메니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집시 음악을 피아노 연주용으로 틈틈이 편곡해 두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은 이 연주 여행의 결과물이었다.

레메니가 ‘표절’을 주장하자, 문제가 커졌다. 브람스도 출판권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끝에 결국 브람스가 승소했다.

승소 이유는 이랬다. 브람스는 ‘헝가리 춤곡’ 을 ‘작곡’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편곡’이라고 표기했다. 또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춤곡들이고, 원작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 브람스는 1880년 ‘헝가리 춤곡’ 제3집과 제4집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신중하게 편곡을 했다. 하지만 브람스 자신의 새로운 감수성으로 빚어낸 독자성과 창작성이 너무 짙게 깔려 있었다. 연주도 훨씬 어렵고 내용도 무거웠다. 1집과 2집에 비해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 광고를 보는 순간 헝가리로 날아가고 싶었다. 어느 항공회사 광고에 소개된 ‘유럽 속 숨겨진 유럽’ 편. 그 중 1위는 헝가리 스테판 불꽃 축제였다. 불꽃 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에서 ‘부다(Buda)’는 헝가리어로 높다는 뜻이다. ‘페스트(Pest)’는 낮다는 뜻이다.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높은 지역의 옛날 도시가 ‘부다’이다. 화려한 왕궁과 대성당, 성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반면에 낮은 지역의 현대 도시가 ‘페스트’이다. 과거의 도시, 부다는 어둡다. 현대의 도시, 페스트는 화려하다. 두 도시를 고풍스런 다리들이 이어주고 있다. 둘이 서로 만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페스트 하늘 위로 쏘아 올려진 불꽃 사이로 ‘헝가리 춤곡’이 흘러나온다. 부다처럼 어둡지만, 페스트처럼 화려하다. 어둠은 화려함을 품고 있다. 슬프지만 흥겹다. ‘헝가리인은 눈물에 의해서만 유쾌하다’라는 말이 있다. 울고 싶은 사람은 지금 떠나자. 부다와 페스트가 만나는 어느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자. 이제 ‘헝가리 춤곡’을 들을 시간이다. 헝가리와 춤을 추자. 모아둔 울음을 쏟아내자. 실컷 울어보자. 웃음이 나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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