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덥다는 말이 입에서 연달아 나올 정도로 무더운 여름이다.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 주에는 법원에서 재판을 하지 않는다. 휴정기간에는 여유를 가지고 휴가도 가고 조금 쉬겠구나 하고 판사 친구에게 물어보니, 재심사건이나 재정신청 사건을 처리하고, 상세한 검토가 필요한 복잡한 사건 기록을 읽어야한다고 한다. 만만한 직업은 없는 모양이다.

필자 또한 평소에 구입해 놓았으나 읽지 못하였던 책을 읽어보려 하였으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선고기일이 잡힌 사건에 대하여 변론재개를 하면서 재판부에서 석명을 구하는 사건이 몇 건 있다. 기록을 대출하여 도대체 왜 선고가 아닌 석명이 필요한지 검토해본다. 공소장 변경이 필요한 사건도 있고, 법리와 사실관계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여야 할 사건도 있다. 주임검사와 연락하여 의견도 나누고, 새로운 증인을 신청하고, 유사사례를 검토해 보기도 한다.

휴가를 떠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많다. 대입 수험생, 특수대학원을 준비하는 수험생, 승진시험을 공부하는 직장인 등 각종 시험을 대비하는 분들은 일분일초를 아껴 실력을 쌓아야 한다. 언감생심 휴가라는 단어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날이 더우니 매미 소리가 더욱 높게 들린다. 새벽 산책을 나가니 이름모를 풀벌레의 노래소리가 온 천지에 가득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마다 점점 여름의 기온이 높아지는지, 여름을 감당할 체력이 떨어지는지 뭔가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책상 밑 대야에 찬물을 떠놓고 발을 담근 상태로 재판을 하거나 근무를 하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입추를 지난 계절의 흐름은 쏜살과 같이 결실의 계절을 기다린다. 한여름의 무더운 뙤약볕을 이겨낸 사람만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적도지방의 더운 지방 사람들은 조금 게으르거나 행동이 재빠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그러한 것도 다 편견일 따름이라는 느낌이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환경에 맞추어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의 세계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나누기’ 또는 ‘분류’는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계절도 봄, 여름, 가을 및 겨울로 분류를 하고, 역사도 삼국시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로 나누기를 한다. 맹위를 떨치던 동장군이 봄바람에 물러가듯, 여름이 깊을수록 가을은 우리의 곁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아열대의 기후처럼 낮동안에 스콜이 내리는 듯한 현상이 몇 번 있기도 하였다. 아무리 태양이 뜨거워도 조금만 지나면 여름은 힘을 잃고 맥을 못출 것이고, 가을의 냄새가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는 휴가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 휴식은 가장 편안하고 여유로운 즐거움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마감시간이라는 존재는 상당한 두려움이 아닐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심신에서 멋진 글이 나오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에는 가벼운 산책이 훨씬 머리를 가볍게 한다.

어릴 적 물장구를 치면서 개울가에서 놀았던 기억, 동네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의 큰 평상에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던 일, 새벽에 졸졸졸 논으로 물 흘러들어가는 소리와 개구리 울음이 가득한 하늘을 호흡하였던 느낌,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근 채 사색에 잠겨본 추억은 항상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한다.

온세상이 뜨거워 움직이기도 싫은 여름날에는 장차 읽을 책을 장만하는 것도 좋다. 구입한 책들을 책장에 반듯하게 꽂아두고 읽을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큰 기쁨이다. 책을 읽는 것이 취미인지 책을 구하여 소장하는 것이 취미인지 구별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반드시 책을 구입하자마자 바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서 하늘이 암흑에 덮히거나, 홀연히 현실을 벗어나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가고 싶을 때 손에 잡히는 책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열정을 더 불태우고자 하는 여름은 낮동안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뜨겁게 달구어 놓는다. 선선한 산들바람을 가져오려고 안달이 난 가을은 여름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진주를 머금은 조개는 아마도 반드시 누군가에 의하여 발견되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무더위와 싸우다가 우연한 기회에 행한 작은 행동이 망외의 기쁨을 주는 일이 적지 않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밝은 것을 알 수 있고, 절망을 알아야 희망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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