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미국 연방대법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지난 8월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김소영 대법관과 대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한미 양국 사법부에서 아직은 소수인 여성 대법관이란 것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진보 성향의 긴즈버그 대법관은 1993년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클린턴 대통령이 긴즈버그 대법관을 존경한 것은 사실이나 처음부터 그를 ‘최선’의 대법관 후보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원래 클린턴 대통령은 보스턴 연방고등법원에 근무하던 다른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점찍었는데, 세금 체납 등 개인비리가 불거지면서 ‘차선’으로 긴즈버그 대법관을 택했다고 한다. 대법관 인선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미국 언론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어부지리’를 잡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2012년 검찰 출신 안대희 대법관의 후임자가 된 김 대법관도 임명 과정에서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우여곡절이 있었다. 애초 안 대법관 후임자로 낙점돼 청와대로 임명 제청이 이뤄진 이는 김 대법관이 아니고 인천지검장을 지낸 김병화 후보자였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벽을 못 넘고 낙마했다. ‘패닉’에 빠진 대법원은 청문회를 가뿐히 통과할 인사를 고르고 또 고르다가 김 대법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사법연수원 기수대로 했다면 한참 뒤에나 가능했을 김 대법관의 대법원 입성이 8, 9년 앞당겨졌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관운’이 억세게 좋은 편에 해당한다. 두 나라 모두 법조인이 대법관에 오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다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미국은 대법관 후보를 검증할 때 법률가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최우선이다. 반면 한국에서 자질과 능력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사법시험이란 ‘좁은 문’을 통과해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되었으면 자질과 능력이야 뭐 굳이 따질 필요가 있겠느냐는 태도다. 그래서 성별이나 재산, 본인과 자녀의 병역 등이 자질과 능력보다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미국의 시민단체와 언론은 정말 집요하고 끈질기다. 1993년 긴즈버그 대법관 후보자의 지명이 발표되자마자 ‘미국시민권연맹(ACLU)’이란 단체가 치밀한 검증 보고서를 펴냈다. 콜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했던 긴즈버그 대법관이 1980년 워싱턴DC 연방고등법원 판사로 옮긴 뒤 내린 판결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자료였다. 놀라운 것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교수 시절 ACLU의 고문을 맡았고, 특히 이 단체의 여성인권 부문에서 맹활약을 펼쳤다는 점이다. 미국은 정말 전관예우의 ‘전’자도 떠올리기 어려운 나라인 것일까.

그뿐 아니다. 미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는 무려 두 면을 털어 ‘인간 긴즈버그’의 민낯을 파헤쳤다. 그가 다닌 고교와 콜럼비아대 로스쿨 동창생들의 증언, 동료 법관들의 평가가 생생히 담겼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로스쿨 학생으로,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그리고 항소심 법원 판사로 보낸 40년 인생이 송두리째 까발려진 셈이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본인 또는 자녀가 군대에 갔다 왔는지, 집 넓이가 어느 정도이고 가격은 평당 얼마나 하는지 등에만 신경을 쓰는 우리나라 언론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미국의 대법관 후보자는 지명 전부터 이미 공인이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나 법학교수 등으로 오래 활동했기 때문에 검증과 평가에 필요한 자료도 충분하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대법관 후보 대부분이 20대 중후반에 판사가 된 뒤 줄곧 법원 내부에 머물렀으니 바깥에 알려질 일이 거의 없다. 대법원이 새 대법관 후보 임명을 제청할 때에야 비로소 ‘아, 우리나라에 그런 판사도 있었구나’ 하는 국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대법원이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명단을 공개해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검증 절차를 거치려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 국민에겐 누가 대법관 적격자인지 검증하고 평가할 정보가 많지 않다.

법조계에서 변호사 등으로 일정한 경험을 쌓은 이들 중에서만 판사를 뽑는 ‘법조일원화’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아직 체감 효과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다가 법관으로 선발된 뒤 거액의 상여금 또는 퇴직금을 받는 등 이른바 ‘후관예우(後官禮遇)’ 현상이 새롭게 생겨났다는 소식에 그저 씁쓸하기만 할 따름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인 2011년 2월 “영국에서 판사가 존경을 받는 것은 이미 존경받는 사람이 법관이 됐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판사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해 바로 법관이 되니 존경받을 틈이 없다”고 한탄한 바 있다. 투명하게 공개된 정보에 근거한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친 법률가, 그런 법률가들 중에서 판사가 배출되는 풍토 - 법조일원화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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