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실무관님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번 불출석했던 OO피고인 있잖아요, 집행관이 가보니 집에 아무도 없더래요, 변호사님께서 한번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피고인이 말했던 과거 근무지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담당 직원이 답해주었다. “아, OO씨…얼마 전에 죽었는데요. 제가 장례식장에 갔다 왔어요. 자살하셨답니다.” “네 뭐라고요?” 뒤통수가 멍멍해졌다. OO씨가 자살을 하다니….

피고인은 교통사고를 내고 현장에서 도망갔다가 하루 만에 자수한 사건으로 재판에 섰다. 공소사실만 보면, ‘음주운전 들키지 않으려고 일단 도망갔다가 다음날 자수했네’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검찰도 그러한 심증을 내비쳤다. 하지만 상담을 해보니 피고인은 음주운전 걸리는 것쯤은 별 일이 아니었다. 단속을 피하는 것이 도주의 동기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피고인은 20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진료기록부를 보니 최근에 우울증이 극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사업을 시켜준다며 목돈을 가져갔던 고향친구는 그대로 잠적하였고 아내는 보증금을 가지고 집을 나갔다. 사건 당일에도 가출한 아내를 찾기 위해, 아내를 보았다는 노래방에 갔다가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피고인은 다른 차량과 부딪혀 두 차량이 모두 역과 되는 큰 충격을 입은 후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차 두대가 뒤집혀 있었고, 눈 앞에 벌어진 상황에 자살을 결심하고 현장을 이탈했다가 통증에 다시 정신을 잃고 다음날에야 경찰서에 가게 된 것이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고민이 왔다. 단순 뺑소니 사안이었지만 피고인은 죄를 감추기 위해 도주한 것은 아니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현장 이탈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심신미약 감경을 주장했다. 뺑소니에 심신미약이라니….

검찰의 따가운 눈초리를 외면하고 당시 도주의 상황에 있어 피고인의 내면상태를 감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전문심리를 신청했다. 약 2개월이 지나고 전문심리회신이 도착했다. 피고인은 심각한 우울상태를 겪고 있으며 그 상태에서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상황을 더 비관적이거나 나쁜 쪽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있었던 상태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왔다. 내가 바라던 유리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이 도착했을 즈음에 피고인은 자살하고 말았다. 허무한 마음과 함께 자책감이 든다. 죽기 전에 내가 연락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좋은 결론이 나왔다. 구속을 피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고 조금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피고인이 심적으로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잠깐 동안 상담을 하는 와중에도 알 수 있었고, 이례적으로 심신미약 주장을 했었다는 것이 그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그런데, 심신미약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피고인의 안위에 대하여는 너무나 무심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한 치 차이다. 분명 이 사람은, 자살 직전 누구의 따뜻한 말을 들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죽고 싶다. 죽을 것이다”고 말했던 피고인들은 꽤 있었지만 대부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고, 위로를 해 주다보면 다음 기일 법정에 씩씩하게 나왔다. 정말 죽는 것 아닌가 염려했던 사람도 무사히 재판을 마쳤기에, 나도 모르게 방심하고 있었다. 진짜로 심각한 사람은 나에게 먼저 연락할 의지도 없었는데 말이다.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조력이 되어 주어야 할까. 특히 나와 같이 하루 수명의 피고인을 상대하는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우에 말이다. 말 그대로 ‘법적’ 조력인이지만 국선을 요청한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적’ 조력의 역할도 감내해야 한다. 책에서는 이런 것을 배우지 못했고, 경력을 쌓아가면서 조금씩 터득해나가는 중이라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다. 세상을 떠난 내 피고인에게 약속해야겠다. 당신들에게 있어 필요한 조력은 법적 조언보다도 따뜻한 말 한마디임을 잊지 않겠다고. 정말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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