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며칠 전에 둘째아이를 출산했다. 다행히도 휴정기에 출산했기에 진통부터 분만시까지 아내의 곁을 지킬 수 있었고, 그 이후 2박 3일의 입원기간과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때 아내가 부탁했던 사항들도 차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는 날까지 약 2주 동안 32개월 된 첫째 아이의 육아를 내가 맡기로 했다.

장모님께서는 그 기간 동안 손자를 봐주시겠다고 자청하셨지만, 평일에는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고 휴정기에는 나도 어느 정도 시간여유가 있으며 무엇보다 장모님의 연세를 고려할 때 굳이 고생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내가 거뜬히 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런데 외부의 도움없이 아들과 단둘이 보낸 1주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선 평일의 경우에는 아들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한 뒤 간편한 시리얼이나 미숫가루 또는 과일 몇 조각으로 아들의 허기를 달랜 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늦잠을 자는 날에는 아침식사도 못하고 바로 출근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출근직전 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동화책이나 장난감에 꽂히게 되면 출근시간과 등원시간은 계획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데, 오전에 상담약속 등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날에는 육아지침서대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설명을 한 뒤 기다려주었지만, 일정이 잡혀있는 날에는 내 속에서 분노와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감할 때가 있었다. 특히 아들이 엄마와 갓 태어난 동생을 보고 싶다며 울고불고 할 때는 정말이지 답이 없었다.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산후조리원에 갔다가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는데, 어찌보면 엄마를 찾는 것은 아이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 사무실에 출근하면 어서 빨리 처리해주길 기다리는 기록들이 나를 맞이했다. 사실 이번 휴정기에는 그동안 밀린 서류작업을 끝내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계획이었으나 출산과 육아로 정신이 분산되어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급한 사건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서면 1개를 쓰고 나니 어느덧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올 시간이다.
6시에 아들을 데리고 오면 다시 산후조리원으로 가서 아내와 아들을 서로 면회(?)시킨 뒤 근처 음식점에서 아들과 저녁을 해결하였는데 가급적 아기식탁의자가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는 세탁기를 돌린 뒤 아들을 씻기고 재우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욕실에서는 반드시 물놀이를 30분 정도 해야했고, 자기 직전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장난감놀이를 같이 해야 했다. 또 아들이 뽀로로 등 애니메이션에서 본 장면을 직접 재연하면서 놀아달라고 할 때는 그 캐릭터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분위기를 맞춰주어야 했다. 그로부터 약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아들의 입에서 “아~졸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래! 드디어 왔구나!’라는 심정과 함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들과 온전히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는데,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오늘 뭐 먹지?’였다. 세끼 중 한끼는 음식점에서 또는 배달음식을 먹었지만 적어도 한끼는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여주고 싶다는 의욕으로 앞치마를 둘렀으나, 결국 (냉동만두를 익힌)군만두와 계란밥으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과 보낸 시간이 의미없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아들의 식습관과 기호음식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자잘한 의견충돌 속에서 아들과의 의사소통방식을 익히게 되었다.

그동안 사건처리 때문에, 모임 때문에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육아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었는데, 이번에 아들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놀아달라는 아들의 요구에 대해 “건형아, 아빠가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놀자”라며 불확정기한으로 자주 연기를 시키게 되면, 20~30년 뒤에 내가 한가해 져서 아들에게 연락을 했을 때 “아빠, 지금은 제가 바빠요. 다음에 갈게요”라는 대답이 돌아와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여하튼 아내가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1주가 더 남았다. 휴정기가 끝나서 조금 더 바빠질 것 같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남은 1주도 부자간의 달달한 추억으로 채울 생각이다.

여보! 산후조리 잘 하고 존경하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