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화이트삭스 등 미국 메이저리그 여러 팀에서 구단주를 지낸 빌 비크(Bill Veeck)는 ‘흥행의 마술사’로 불렸다. 그는 컵스 홈구장 리글리 필드의 펜스를 담쟁이넝쿨로 뒤덮은 주인공이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인수한 뒤에는 아메리칸리그 최초로 흑인 선수를 경기에 내보냈다. 하지만 야구 애호가들이 빌 비크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남긴 명언 때문이다. “야구는 불공정한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정한 것이다. 당신이 세개의 스트라이크를 먹는다면, 세계 최고의 변호사라 할지라도 구해주지 못한다.”

한껏 야구의 멋을 드높인 자찬이겠지만, 이는 종종 변호사의 능력을 치켜세우는 말로 회자된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중소형 로펌 ‘번스틴’은 홈페이지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로고와 함께 빌 비크의 명언을 적어 두고 있다. 이 로펌은 “빌 비크의 말이 맞다”면서도 “세상에서 공정한 또 다른 한 가지는 법률”이라고 소개한다. 지나치게 솔직한 것인지 미국인 특유의 유머인지, 마지막엔 이런 말도 건넨다. “여러분이 삼진을 당한 그 때가, 바로 우리 변호사들이 득점하는 때입니다.” 최고의 변호사임을 자부하는 말이겠지만 어딘지 얄밉게 들린다.

위기마다 대타를 찾으면서도, 세상 많은 이들은 변호사의 득점을 얄미워했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조개는 칼로 열고 변호사의 입은 돈으로 연다”고 하더니, 우리나라에서는 숫제 “의사와 변호사는 나라에서 내놓은 도둑놈이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주로 외야 관중석에서 벌어진 이런 험담의 다음 수순은 대타들의 몸값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캐셔로 취직한 변호사가 있다느니, 월 30만원 임대 사무실 ‘쪽방 변호사’가 있다느니…. 역경매(逆競賣)로 의뢰인과 변호사를 잇는 인터넷 사이트가 꾸려질 때에도 사람들은 변호사 업계의 흥망을 논했다.

출처 모를 비아냥과 대상 모를 우려들은 일부 변호사들만 홈런을 뻥뻥 친다는 반감의 표출일 테다. 결정적인 홈런일수록 꼭 선후배 동문이 투수나 심판일 때 터진다는 의혹은 이 반감을 키워 왔다. 지난달 27일 대법원은 형사사건 성공보수약정을 역사의 뒤편으로 보내며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했다고 여러 번 설명했다. “장차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과 같은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키고….” 대법원은 “앞으로는 변호사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방식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사법사를 바꾸는 혁명적 판결’이라는 대법원의 자평에 언론도 “불기소·불구속이 과연 ‘성공’이냐”는 소제목을 뽑아 가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판례를 평석할 능력이 없어 주변에 견해를 물으니, 과연 찬반 의견이 다양했고 저마다 분석한 원인이 달랐다. 어떤 변호사는 “양심대로만 판결이 된다면 전관예우며 과도한 성공보수는 자연히 사라진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의료서비스에는 왜 성공보수가 없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입법이 아닌 판례 변경으로 관행을 손질하는 게 과연 민주 절차에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울림이 컸다.

향후 재판비용은 과연 줄어들 것인가, 형사가 아닌 민사 성공보수는 왜 괜찮은가… . 제시되는 의견마다 근거가 있었고 틀린 말이 없어 보였다. 다만 얼른 알아들을 수 있던 대목은, ‘과도한 성공보수’니 ‘합리적 개선’이라는 말이 못내 억울한 변호사들이 많을 거란 얘기였다. 법조기자실의 한 선배가 전해주는 어느 검사 출신 변호사의 이야기는 단연 생생했다. 그는 “이달엔 그래도 200만원을 넘게 벌었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한다. 미래의 성공보수에 희망을 둔 모양이었다. “수임한 사건이 있는데, 무죄 판결이 나오면 소주를 한잔 사겠다”고도 했다.

누구보다도 전관예우 관행을 혐오한 건 이런 다수 변호사들일 것이다. 법조 브로커부터 잡아넣으라는 성토는 기자실에까지 들려온다. 소주 한잔 사겠다던 변호사가 법복을 벗은 배경에도 그런 게 있었다. 당직검사로 출근한 어느 휴일, 경찰 송치 기록과 거의 동시에 검사실에 도착한 변호사가 있더란다. 직전 근무지에서 부장으로 모시던 이였다. 말없이 기록을 검토했다. “…선배님, 영장을 청구해야겠습니다.” 그가 도장을 꺼내 들자 변호사는 찬바람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돈 벌지 말라는데, 할 수 없지.”

전관예우 관행을 논한 기사에는 “세상 가장 쓸데없는 게 변호사 걱정” “언제는 법이 공정한 적이 있었냐”는 냉소적인 댓글이 달리고 있다. 게임을 이 지경으로 만든 데는 선수와 심판뿐 아니라 기록원이나 관중의 탓도 있는지 모르겠다. 기록원은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적었고, 관중은 그저 삐딱하게만 바라본 건 아닐까. 스트라이크 하나쯤 볼로 눈감아 달라는 타자를, 출신 좋은 대타를 ‘사겠다’는 선수를, 스트라이크 존보다 선수의 이름을 먼저 살피는 심판을, 기록원은 쓰고 관중은 야유해야 한다. 스트라이크가 벌써 세개인데, 계속 공을 던져 주는 건 승부에 대한 모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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