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도 다른 소송처럼 얼마나 객관적인 증거를 신속하게 확보하느냐가 성패의 중요한 갈림길이다. 의료소송의 어려움 중 하나가 정보의 편중성이다. 환자의 진료정보를 의료기관에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자 스스로도 자신이 어떤 진단과 치료를 받았고, 그 결과 제대로 치료되었는지를 알기 어렵다. 이런 고차원적 정보는 고사하고 응급실이나 입원실에 의사와 간호사 유무 및 진료시간 같은 단순정보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진료정보를 기록한 진료기록은 중요한 만큼 허위로 작성될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환자 측에 진료기록열람복사청구권이 있지만 실제로 허위작성여부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기록복사를 요구하면 주치의사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며칠씩이 지난 후에야 복사해주어 그 사이 위·변조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에는 CCTV가 보안목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CCTV 영상기록은 의료법상 작성보관의무가 있는 진료기록이 아니어서 복사요구가 거절되어도 달리 강제할 방법이 없다.

실무상 CCTV 영상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길거리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 동영상이 사고경위나 범인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다. CCTV 영상자료는 겹쳐서 반복 녹화되기 때문에 본안소송 후에 문서제출명령을 하여도 이미 덮어쓰기가 된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 자료를 확보할 수 없다.

사고 직후 형사고소하면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지만, 무혐의처분 시 민사소송도 기각될 위험이 있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따라서 제소 전 증거보전절차를 기습적인 방법으로 밟으면 위·변조되기 전의 진료기록이나 의료기관 내의 CCTV 영상을 확보하여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증거보전은 검증과 서증방법이 주로 이용된다. 검증은 절차가 복잡하고 검증조서작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주저하는 법원도 있으므로 검증의 필요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또한 법원에 따라서는 ‘의료법상 환자에게 진료기록열람복사청구권이 있고, 의료기관은 허위작성죄가 있는데 굳이 증거보전을 신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입증에 가까운 소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증거보전신청이 기각될 경우 불복방법이 없기 때문에 소명에 충실하여야 한다. 단순히 ‘위변조의 우려가 있다’는 원론적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증거보전의 관할은 의료법인의 주소재지가 아니라 진료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소재지이다. 증거는 진료기록, CCTV 등 조사해야 할 목적물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기재해야 한다. 신청한 이외의 목적물에 대한 증거조사는 하지 못한다.

증거보전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정문의 송달방법이다. 증거조사는 의료기관이 진료기록, CCTV 등의 위·변조, 은닉·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전에 증거로서 확보하는 절차인 만큼 결정문이 너무 일찍 송달되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할 우려가 있다. 집행관으로 하여금 증거조사 1~2시간 내에 특별송달을 하도록 하고, 사전에 법원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정시간에 송달하도록 지정하여도 이를 어기고 미리 송달하여 증거조사의 기습성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으므로 집행관에게 송달취지를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는 집행관이 송달할 무렵 의료기관에 가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판사가 오면 즉시 증거조사절차를 진행한다. 전자문서일 경우에는 파일에 담아 오고, 종이문서일 경우에는 현장에서 2부를 복사하여 법원과 변호사가 각각 가져온다. 복사가 어려운 경우 원본을 법원으로 가져와 복사한 후 반환한다. 증거조사 시 수정액으로 지운 흔적이나 시간을 추가 기입한 부분은 위·변조 항변을 조서에 기재하게 요구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여 본안에서 입증방해주장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증거조사한 기록은 본안소송에서 실시한 증거조사와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고, 조사비용도 소송비용의 일부로 본다. 증거조사기록은 필요한 경우 번역하여 본안청구 시 입증자료로 활용한다. CCTV 영상자료는 설치 업체마다 저장 및 재생방법이 달라 제대로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으므로 해당 관리업체의 협조를 받아 동영상이 재생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판례상 CCTV 영상과 진료기록이 다른 경우 CCTV 영상을 기초로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증거보전절차를 잘 활용하는 것을 적극 고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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