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어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한반도의 북쪽 어디쯤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나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나마나 어디 정치범수용소에서 아무런 기약도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하고 있거나 아니면 무슨 반동적 발언이라도 조심성 없이 내뱉다가 고사총의 희생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다행스러운 삶은 오로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행운의 덕분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하게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오늘 나의 삶이 이만큼 지탱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공짜로 주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해방 후 치열한 좌우대립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선대가 힘들여 선택한 것이고, 6·25 전쟁의 엄청난 시련과 희생을 통하여 피로써 지켜낸 것이며, 그 후에도 수십년의 오랜 세월 동안 온갖 고통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다듬고 발전시켜 온 것이다. 앞으로도 이것저것 손볼 것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런대로 이만큼 만족스러운 나라를 만들어 왔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에 해방 후 우리의 선대가 대한민국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어떤 선택을 하였더라면,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이 패전하여 한반도 전체가 적화되고 대한민국이 소멸하고 말았더라면, 지금 우리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어떨 것인지는 상상만 하여도 아찔하고 끔찍하다.

그런 뜻에서 대한민국은 고맙고도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이다. 고마운 만큼 성의를 다하여 보답하고 싶고, 자랑스러운 만큼 잘 지켜내어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고 싶다. 특히 그 건국의 역사를 스스로 축하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을 정하여 자축하면서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건국기념일이 없다. 광복절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광복절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자는 것이지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그거나 그거나 같은 것이지 무엇이 다르냐고 또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전혀 다르다. 광복은 연합국의 전승으로 일본이 항복함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대한민국의 건국은 일본이 물러난 그 자리에 우리가 나라를 세운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이 물러난 빈 자리에 대한민국 이외의 다른 어떤 나라를 세울 수도 있었으나 우리는 대한민국을 선택하여 세운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각 그 70주년 전승기념일 행사에 우리 대통령을 초대하는데 우리 대통령이 참석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한다고 하니 그 기념행사의 규모가 꽤 큰 모양이다. 우리도 광복절을 전승기념일의 의미로 자축하면 어떨까? 러시아나 중국이 그 국토를 침범한 독일이나 일본과 치열하게 싸워 결국 침략자를 몰아낸 것을 기념하는 데에 딴죽을 걸 수는 없겠으나 우리는 사정이 좀 다르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일본과 싸워 일본을 이 땅으로부터 몰아냈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좀 꿀리는 점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힘이 미약하여 충분히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므로 광복절을 전승기념일로 삼기에는 좀 낯간지러운 점이 있고, 그런 사정에서 해마다 광복절기념식장에서는 어쩐지 좀 우울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것은 다르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세운 나라이고, 그 건국이 잘된 것이라는 것은 지난 역사가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을 정하여 크게 자축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고, 응당 그렇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된 것인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대외적으로 명백히 드러난 날이 바로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이라 할 것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드러난 날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어 공포된 날이라고 할 것이다. 바로 1948년 7월 17일! 7월 17일은 이미 국경일로 정해져 있으나 단순한 제헌절, 즉 헌법제정일의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로 승격시켜 크게 기념하고 싶다.

종전에는 제헌절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언제부턴가 공휴일에서 제외되어버렸다. 제헌절이 국경일이기는 하나 다른 국경일, 즉 삼일절이나 광복절 또는 개천절보다 격이 떨어지는 국경일로 되고만 것이다. 잘못된 조치로 보인다. 7월 17일을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로 본다면 공휴일 지정을 취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공휴일을 줄이는 일이 있더라도 건국기념일만은 이를 공휴일로 지정하여 온 국민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크게 여는 것이 옳고, 그것도 3일간 정도 길게 공휴일로 지정하여 다른 국경일보다 그 격을 현저하게 높이는 것이 더욱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2018년 7월 17일에는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을 맞이하여 미국 및 러시아 대통령, 중국 국가주석, 일본 총리, 6·25 전쟁 참전국 대표 등을 손님으로 초대한 가운데 성대하게 기념식을 거행하면서 세계의 축복 속에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의 건국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나 개인적 삶에 미치는 혜택을 다시 한번 음미하는 계기로 삼게 될 것을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크게 자축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미래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고,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앞당기는 원동력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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