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국회의사당 중앙홀에서 열린 제67회 제헌절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국회의사당 잔디광장 한켠에 오롯이 서있는 ‘과일나무’ 조형물을 보았다. 빨강, 노랑, 녹색 등의 원색으로 사과, 바나나, 피망, 참외, 당근, 무, 토마토 등 온갖 과일과 채소가 엉켜 있는 기묘한 설치물이었다.

오랜만에 국회의사당에 들어와 본 이‘과일나무’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회의사당 광장의 푸른 대지에 뿌리를 박고 선 과일나무는 건강미와 풍요로움이 돋보였다. 국회의사당 기단의 돌 위에 얹혀 있지 않고, 푸른 잔디밭 광장에 설치되어 있어 과일나무가 더욱 생동감 있어 보였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서양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최정화 작가의 작품이다. 높이 7m, 지름 5.5m, 2.5톤 규모로 폴리우레아(압축스티로폼) 소재로 만들어진 이 조형물은 지난 4월 국회문화축제마당 행사때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다산과 풍요’, ‘인공과 자연의 조화’, ‘민관의 화합’, ‘대립의 일치’ 등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과일나무가 국회의사당의 새로운 볼거리로 국민에게 더욱 친숙한 국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다고 한다. 압도하는 듯한 국회의사당과 정형화된 사각의 석조 공공건물에 둘러싸여 있는 과일나무에 대해‘국회라는 삭막한 정치의 현장에 참신한 느낌을 준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편으로는 이 작품에 대해 ‘예술작품이라 하기에는 너무 흔한 소재가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사당이나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설치물이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 공공건물에는 너무 생뚱맞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논란은 최정화 작가가 당초 의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최 작가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형형색색의 각기 다른 플라스틱 용기들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는 사용하는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설치작업을 발전시켜온 작가이다. 그동안의 작품세계와 연결시켜 보면 과일나무에 대한 참신하다는 반응과 생뚱맞다는 느낌이 상반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최 작가는 2014년 리움 미술관의 로툰다에 설치되었던 ‘연금술(Alchemy)’이라는 작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용기들을 줄로 연결하여 천장에서 로비까지 걸어놓아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바 있다. 또한 같은 해 10월 옛 서울역사에 설치되었던‘총천연색’이라는 작품에서는 플라스틱 소쿠리와 플라스틱 뚜껑 등을 이용하여 현란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의 일련의 작품세계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과일나무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플라스틱 등을 통해‘일상의 연금술’을 행하는 그의 예술세계에 근접한 평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일나무를 보면서 사실 나는 국회라는 현실에서 빠져나와 다소의 위안을 얻었다. 국회는 사회의 온갖 이해집단들의 이해와 요구가 충돌하는 곳이기에 어느 정도의 혼란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국회는 분열과 갈등을 민주적 절차를 통해 통합하고 수렴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이런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국회의 영향력은 커져가고 있지만 국회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정치불신이 나날이 증폭되어 가고 있다.

특히, 법안 등 안건처리에 있어 국회 선진화란 명목으로 5분의 3 이상의 가중다수결제도를 채택한 이후에는 무능국회, 불임국회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고 있다.

국회 한 가운데 서 있는 과일나무는 낯선 충격으로 현실정치에 좌절하는 사람들을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과일과 채소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작품을 통해 풍요와 결실, 통합을 느끼고 나아가 위안을 얻게 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의사당 안에 다소 생뚱맞기도 한 이 풍경이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느낌과 희망을 주고 있다면 이것이 예술 아닐까?

과일나무에서 온갖 생각과 주장, 이해, 요구를 녹이고 묶어 결국에는 하나로 통합하여 풍요롭고 아름다운 열매를 만들어내는 국회, 그래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회에 대한 염원을 느껴본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