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싯적 꿈은 용감하게도 ‘대법원장’이라고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어 있다. 그런 내가 15년 전 법학도로 첫 걸음을 내딛을 때, 법조인의 역할이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질서회복에 있다며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당돌했던 스무살 청년은 이제 겨우 두 살배기 대한민국 청년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선 나부터 ‘열정 충만했던 법학도 시절의 초발심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청년카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갓 변호사가 되고나서 어떻게 살아야 변호사로서 제대로 사는 것인지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실제사건의 대부분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극적인 변론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고, 변호사의 역할이 생각보다 참 넓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경륜 있는 선배변호사들은 하나같이 ‘법(法)이란 문자 그대로 물(水)흘러가(去)듯이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과 ‘무슨 일이든지 남의 일하듯이 해서는 좋은 성과란 있을 수 없다’며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주인정신을 가져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사서 중 하나인 대학을 살펴보면 ‘성의(誠意)는 무자기(毋自欺)’라고 정의하고 있듯이 적어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야 말로 모든 일에 진심을 담아 낼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실제로 담당하는 사건이나 주어진 임무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는 남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고, 자기 혼자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성찰이 담보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 정신’이 필요한 영역이 비단 변호사업무 뿐이겠는가. 침몰하는 세월호에 갇혀있는 많은 승객을 외면하고 홀로 탈출한 선장과 ‘해피아’가 함께 저지른 2014년 4월 16일의 안타까운 희생, 지난 1월 네살배기 여자아이가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폭행을 저지른 유치원 보육교사 사건, 2015년 여름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를 살펴보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야기들 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세월호에 탄 승객을 대피시키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파란바지의 영웅 김동수씨와 여전히 현장에서 묵묵히 아이들의 보건과 양육을 위해 힘쓰는 수많은 유치원 교사들이 있다. 또한 메르스 의심증세로 인해 자가격리 기간 2주를 자발적으로 지켜준 선량한 시민들과 헌신적으로 치료와 간호에 앞장선 의료인들이 있다. 이러한 모습을 마주할 때면,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만큼 성장한데는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서 숭고한 희생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나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주어진 일 하나하나에 좀 더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는 변호사업계의 일꾼이 되기를 다짐하게 되었다. 나부터 변호사로서 내가 가진 최선의 열정을 다하고 있는지 반성하며, ‘나는 과연 밥값을 하고 있을까?’ 자문하고는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스스로 약속한 것이 몇 가지 있다. 나는 평일 밤에 개인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내가 생각하는 충실 근로의무는 출근 전날 밤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적으로 내가 강철 같은 체력을 소유하지 못한 탓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근로계약, 위임계약을 떠나 누가 보지 않더라도 맡은 일을 대강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근무시간에는 개인 휴대폰을 되도록 멀리하여, 업무 충실도를 높이기로 정했다.

요즘 변호사업계가 예전과 달리 춥다고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험합격 한번으로 모든 것을 보장받는 사회는 온당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이다. 오히려 변호사들에게도 계속적인 변화와 노력을 요구하는 사회야 말로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또한 한편으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정 넘치는 청년변호사들의 땀과 노력을 인정해주고, 변호사의 지적재산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곳도 선진국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새내기라도 대한민국 변호사 아닌가? 변호사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시민의 삶의 질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하면서 지내야 하지 않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시작은 결국 ‘진심’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중기 성리학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던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한 마디를 전한다. “毋自欺三字 是吾平生所自勉者[‘무자기(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이 세 글자는, 내가 평생 스스로 힘쓴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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