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연어의 꿈’이라는 책이 우편으로 왔습니다. 탈북이주민 청년이 쓴 책인데 어떤 분이 한권을 내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 제목 자체로도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고 생각을 먼저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그 책에 대한 나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탈북이주민들은 새터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탈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였다는 뜻의 새터민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름이 주는 불편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마음의 불편함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어젯밤 서울역에서 강남역으로 오는 도중에 지하철 객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탈북이주민은 착한 이웃’이라고 적고 ‘착한’이라는 단어 밑에 ‘着韓’이라는 한자를 적었습니다. 정부출연 재단의 포스터였습니다.

나는 위 글을 보면서 마음이 매우 불편해졌습니다. 위 글은 탈북이주민들을 좋은 이웃으로 대하자는 취지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着韓 이웃이라니! 나는 ‘착한 着韓 이웃’이라는 말에서 ‘순진무구한 이웃사람’과 ‘한국에 도착한 이웃나라 사람’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순진하거나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라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위와 같은 중의적인 호칭을 삼가고 매우 정직한 호칭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칭이 정직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존중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 아래로 이주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자유를 찾아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온 이북지역의 이주민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좋은 이웃이라고 부르거나 한국에 도착한 이웃이라고 부르지 않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섞여서 살아갈 권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고향이 부산이거나 목포인 사람들과 같이 고향이 평양이거나 원산인 사람들입니다.

나는 서울지방변호사회를 통하여 탈북이주민들의 적응기간 중에 실시되는 법률소양교육에 몇 차례 강사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나는 그들의 어려움이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해 보았는데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았습니다.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낯설고 초기 정착금으로 살아갈 대한민국에서의 생존이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공무원들을 대할 때나 나와 같은 강사들을 만날 때에 매우 정중한 모습으로 몸을 90도에 가깝게 굽혀 인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인사가 매우 불편하였습니다. 그들이 엎드려 인사할 때 우리는 너무나 거만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들이 마치 왕실의 고관들에게 인사하듯이 우리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출 때 우리는 이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그 이후로는 대부분 무관심해졌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착한 이웃일 때 우리는 대부분 나쁜 이웃이었습니다.

그들은 국경 안내자들에게 거액의 사례금을 약속한 후 죽음의 경계선을 여러 번 넘고 넘어 대한민국의 땅에 들어왔습니다. 2만8000명의 탈북이주민들이 우리의 곁을 맴돌고 있을 때 이북에는 2500만명의 주민들이 굶주림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탈북이주민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땅에서 어떤 꿈을 꾸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빈곤과 통제를 벗어나 풍요와 자유의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존재하는 경쟁과 이질감을 극복해야하는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출발점이 매우 뒤쳐졌고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지만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탈북청년들은 앞으로 통일한국을 이끌어갈 주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주민들을 결합하여 통합된 사회로 이끌어가야 할 적임자들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을 동시에 이해하고 그 통합점을 찾을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혹독한 경쟁을 극복하고 큰 바다에서 살아남았을 때 그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야 할 신분을 얻습니다. 그 청년들이 장년이 되기 전에 북으로 들어가서 그곳을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장의 한계점을 만나고 있을 때 한반도의 변화는 남과 북의 통일로 확장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토착주민들이 탈북이주민들을 착하게 대할 때 통일한국의 주역들이 우리 모두를 착한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분단은 아직 70년을 지나지 않았고 우리가 북쪽보다 잘 살게 된 것도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국민의 일부가 연어의 꿈을 꾸면서 북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할 때 우리야말로 남북이 합쳐질 새로운 바다를 꿈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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