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서 200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의 어느 날 저녁,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학교 앞 거라지(The Garage) 2층의 한 테이블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개의 빈 테이블 건너에 등을 보이며 혼자 앉아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남자가 있었을 뿐 실내는 한산하였다. 딱히 할 일도 없던 나는 그의 등 너머로 보이는 출입구 쪽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꽃다발을 든 남자가 걸어 들어 왔고 그는 곧장 기다리고 있던 남자에게로 향하더니 입맞춤을 하고 포옹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눈앞의 광경에 나는 얼떨떨하였다. 그러다 문득 꽃을 들고 온 남자의 시선이 포옹하는 상대방의 어깨 너머로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서야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고개를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들을 내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뜻하지 않게 동성 연인들을 눈앞에서 처음 보게 된 나는 내가 하는 행동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눈에 나는 무례하고 뻔뻔한 동양여자로 비쳤을 것이다. 편견을 갖지 말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라 믿었던 내 머리와 몸이 엇박자로 움직였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뒤늦게 안 것인데 매사추세츠는 2003년에 주대법원 판결로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 주였다. 그 당시 동성결혼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각 주의 정책에 맡겨져 있었는데 입법이나 판결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주도 있었지만 대개는 결혼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행위는 형사적으로도 처벌 대상이었다.

일례로 조지아 주에는 성인들이 서로 동의하에 은밀하게 행하더라도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를 형사처벌하는 법이 있었다. 1986년에 동성 간의 행위가 문제로 된 사안에서 연방대법원은 조지아 주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하였다(Bowers v. Hardwick). 그때 연방대법원은 자유의 개념 속에 위와 같은 성적 행위를 할 권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경박한 일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2003년에 와서 연방대법원은 획기적으로 입장을 바꾼다. 헌법의 적법 절차 조항(Due Process Clause) 아래서 자유는 정부의 간섭 없이 사적인 행위를 할 권리를 포함한다며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텍사스 주법이 위헌이라 판결하였던 것이다(Lawrence v. Texas).

이로써 앞의 바우어스 판결은 번복되었고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률이 무효가 되면서 동성애는 더 이상 처벌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동성결혼을 주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동성애가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이들의 결혼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동성결혼 허용에 관해서 연방대법원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가 계속 주목을 받아왔다.

2013년, 동성배우자로부터 전 재산을 물려받은 뒤 배우자 상속공제를 주장하는 사안에서 연방대법원은 연방정부가 이성부부와 주법으로 인정받은 동성부부를 차별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하였다(United States v. Windsor). 이 판결이 정면으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을 한층 고조시켰었다. 2015년 6월, 마침내 연방대법원은 수정 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 보장에 따라 각 주는 동성 사이의 결혼을 적법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로써 동성결혼 합법화를 둘러싼 법원에서의 오랜 논쟁은 찬성론자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5대 4의 근소한 표차에서 짐작되듯이 연방대법원 판결은 법원 밖에서의 논쟁까지 모두 잠재우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대선과 맞물려 미국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듯하다. 비단 종교적인 신념의 문제만이 아니라 입법·사법·행정의 권한과 역할,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관계와 같은 다른 문제들도 얽혀있기 때문이다. 반대의견을 낸 연방대법원장과 대법관들도 이번 판결로 각 주에서 찬성론과 반대론이 서로 경쟁하며 선거와 투표로 정책을 결정해 온 미국의 시스템이 훼손되거나 연방대법원이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해 입법권을 침해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였다.

지금 우리 법원도 동성부부의 혼인신고 수리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케임브리지에서의 그 겨울 저녁 이후로 남의 나라 판결을 쭉 지켜보았다면 이제 우리나라 판결을 지켜볼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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