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5. 21. 선고 2011도1932 판결

1. 서론

재심은 유죄의 확정판결에 사실오인의 오류가 있는 경우 이를 바로 잡아 무고한 시민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키는 비상구제절차이다. 재심은 재판제도와 함께 존재하는 제도이다. 사람이 재판을 하는 이상 인간 이성의 한계, 재판제도의 한계로 오판은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의 경우에는 국가가 고문, 불법구금, 폭행, 협박으로 사건을 조작한 역사가 있다. 오판, 즉 잘못된 판결은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오판과 조작된 판결은 법적 안정성이 아니라 무고한 시민을 짓밟는 불의일 뿐이다.

이처럼 재심은 필연적인데 현실에서 재심의 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시민의 인권과 명예보다는 사법부와 국가의 권위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사법부의 관료적 태도 역시 원인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재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과 강기훈 사건의 재심이 그 예이다. 재심에 대한 인식 변화는 재심대상 판결의 대상이 확대되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사실관계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는 1973. 4. 28. 피고인 손영길과 윤필용에 대한 73보군형 제94호 업무상횡령 등 사건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업무상횡령, 군무이탈방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경제의안정과성장에관한긴급명령위반,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죄로 징역 15년 및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은 위 원심판결에 대하여 육군고등군법회의 1973년 고군형항 제306호로 항소를 제기하였고, 육군고등군법회의는 1973. 7. 30.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일부 업무상횡령, 경제의안정과성장에관한법률위반, 일부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의 점을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15년 및 벌금 1100만원을 선고하면서 공소사실 중 일부 업무상횡령, 군무이탈방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일부 총포화약류단속법위반의 점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으며(재심대상판결), 관할관은 1973. 8. 8. 피고인에 대한 위 징역 15년형을 징역 12년으로 감형하여 확인하였고, 피고인과 검찰관 모두 상고하지 아니하여 그 무렵 위 재심대상판결은 확정되었다. 피고인은 위 형의 집행정지로 석방되어 있던 중 1980. 2. 29. 형의 언도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특별사면을 받았다.

피고인은 확정된 위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2010. 4. 5. 고등군사법원에 재심청구를 하였고, 위 고등군사법원은 2010. 8. 11. 재심대상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유죄부분에 대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고 재심심판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이송하였다. 서울고등법원은 제1심 판결 중 이 사건 공소사실 부분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두 가지 점에 대하여 판단을 했다. 하나는 군사법원과 일반법원의 재판권에 대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사면으로 형선고의 효력이 상실된 유죄 확정판결이 재심청구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이 중 본 평석의 주제는 후자이다. 대법원의 판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죄판결 확정 후에 형선고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특별사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형선고의 법률적 효과만 장래를 향하여 소멸될 뿐이고 확정된 유죄판결에서 이루어진 사실인정과 그에 따른 유죄 판단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위 유죄판결은 형선고의 효력만 상실된 채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한편 형사소송법 제420조 각 호의 재심사유가 있는 피고인으로서는 재심을 통하여 특별사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불이익, 즉 유죄의 선고는 물론 형선고가 있었다는 기왕의 경력 자체 등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만일 특별사면으로 형선고의 효력이 상실된 유죄판결이 재심청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특별사면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재심청구권을 박탈하여 명예를 회복하고 형사보상을 받을 기회 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 재심제도의 취지에 반하게 된다. 특별사면으로 형선고의 효력이 상실된 유죄의 확정판결도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유죄의 확정판결’에 해당하여 재심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4. 평석

(1) 판례 변경의 전원합의체 판결

본 판례는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이전의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변경전 판례는 대법원 1997. 7. 22. 96도2153 판결과 대법원 2010. 2. 26. 2010모24 결정 등이다. 변경전 판례는 ‘특별사면에 의하여 유죄의 판결의 선고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면 이미 재심청구의 대상이 존재하지 아니하여 그러한 판결이 여전히 유효하게 존재함을 전제로 하는 재심청구는 부적법’하다고 보았다. 재심을 매우 예외적인 제도로 보면서 가능한 한 재심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위 판결에 대해서는 첫째, 유죄의 선고와 형의 선고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 둘째, 사면은 어디까지나 형의 선고만을 실효하게 한다는 점을 근거로 유죄의 선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별사면을 받은 경우라도 재심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신동운, 김인회 등). 그리고 이 사건의 원심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집행유예 기간의 경과로 형선고의 효력이 잃게 되는 경우와도 불균형이 있었다. 만일 ‘형의 선고의 효력을 상실한다는 의미를 유죄의 선고도 효력을 상실한다는 의미로까지 해석하여 그러한 경우 재심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후 그 선고의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유예기간을 경과함으로써 형의 선고가 효력을 잃게 된 경우에는 그 집행유예의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청구도 할 수 없다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이 사건 원심의 설시)’하는 것이다. 이번 판례는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여 판례를 변경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재심의 문을 조금 더 확장했다.

(2) 재심 대상 판결의 확장

재심은 유죄의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한다. 법규정은 재심의 대상을 유죄의 확정판결에만 한정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재심의 대상을 확대하는 경우 발생하는 법적 안정성의 문제를 고려한 것이다. 무죄판결, 관할위반판결이 재심의 대상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고 유죄의 확정판결이 아닌 모든 판결이, 나아가 모든 형식재판이 재심의 대상에서 배제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 형선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사면의 경우나 실체심리 후 면소판결이나 공소기각결정을 한 경우에는 유죄판결이 선고된 경우와 법률적, 사실적으로 유사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시민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은 같다.

면소판결의 경우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재심이 가능한 경우를 인정한다. 대법원은 역사적인 긴급조치 판결에서 ‘형벌에 관한 법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인하여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였거나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된 경우, 당해 법령을 적용하여 공소가 제기된 피고사건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며 ‘나아가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형벌에 관한 법령이 재심판결 당시 폐지되었다 하더라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배되어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이 규정하는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의 무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2013. 5. 16. 2011도2631). 이 판례는 두 단계의 논리를 거친다. 먼저 형벌에 관한 법령이 재심판결 당시 폐지되었다면 면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이중에서 그 법령이 처음부터 위헌·무효인 경우에는 면소판결이 선고되어야 할 사건을 대상으로 무죄판결을 하여야 한다. 결국 대법원은 면소판결이라고 하더라도 형벌법규가 처음부터 위헌·무효인 경우에는 재심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 판결은 유죄의 확정판결이 아닌 판결을 재심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재심의 역사에서 큰 의의가 있다.

평석 대상인 본 판례는 면소판결의 재심가능성 인정에 이어서 나온 판례이다. 사면의 경우에도 재심을 인정함으로써 재심의 대상을 유죄의 확정판결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재심의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사법부의 권위보다는 시민의 인권과 명예를 두텁게 보호하려고 한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법원은 2015. 7. 1.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의 재심사유를 1심 재판에 한정하지 않고 항소심까지 확대했다. 원래 소촉법의 재심사유는 1심의 유죄판결에 한정된 것이었으나 대법원은 ‘피고인 불출석 때 일반적으로 1심에서 판결이 확정된다는 사정을 고려한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항소심이 불출석으로 진행됐을 때도 인정’된다고 보았다(연합뉴스 2015. 7. 1.). 이 판례 역시 재심의 대상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시민의 자유와 인권, 명예를 회복시키는 경우에는 법률 규정을 유추, 확대해석해도 문제가 없다. 재심이 이 경우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식재판인 공소기각결정에 대해서는 재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2013. 6. 27. 2011도7931). 공소기각결정이 확정되었다면 비록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결론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재심이 인정되었어야 했다. 이 사건은 외할아버지와 손자에 대한 간첩조작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외할아버지와 손자는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상고심에서 외할아버지는 사망하여 공소기각결정을 받았고 손자는 상고 기각되어 항소심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이후 이 사건은 간첩조작 사건임이 밝혀져 외할아버지와 손자는 함께 재심을 신청했다. 손자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인권과 명예를 회복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그렇지 못했다. 이 경우에는 재심으로 외할아버지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했어야 했다. 외할아버지는 형식재판을 받았지만 항소심의 유죄판결과 공범의 존재로 무죄추정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인권과 명예의 침해이다. 대법원이 아직도 시민의 인권, 명예를 참으로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재심의 대상이 무한 확대될 수는 없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무죄판결, 관할위반판결은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유죄의 확정판결이 아닌 모든 판결이 재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민의 인권, 명예의 회복을 위해서는 재심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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