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연애할 때 몇 번인가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다가 매번 싸웠다. 그러다보니 나도 가르쳐줄 생각이 없고 아내도 배울 생각이 없게 되었다. 말이나 글로 가르쳐 주기 힘든 일들이 세상엔 많은데, 자전거 운전하는 방법이 그런 것 같다. 예컨대 “오른쪽으로 기울것 같으면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라든지, “속도를 일정 수준 내지 않으면 넘어지니까 무섭더라도 페달을 더 굴려”라고 말해봤자 본인이 터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자전거 타기는 본인이 몇 번 넘어지는 등 시행착오를 겪어야 배울 수 있는 일이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운전하는 방법이 몸에 착 붙는다.

반면 아내는 요리를 잘한다. 아내가 내게 몇 번 가르쳐 줬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음식을 만들면 별로다. 요리책을 펼쳐놓고 만들어도 그렇다. 레시피에 적혀 있는대로 간장 몇 큰술, 설탕 몇 스푼 넣고 시간까지 맞춰 불을 지펴도 맛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 갓 2년차로 접어든 변호사 일도 그렇다. 전에 소속된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에게 서면 지도를 받아도, 같이 재판에 출석하여 대표가 재판에 임하는 모습을 보아도, 혼자 서면을 쓰거나 재판에 출석했을 때 그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돌발적인 재판장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다가 재판정을 나오면서 ‘이럴 땐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후회만 한다.

사건의 쟁점을 찾지 못해 머리를 싸매고 며칠 밤 고민하다가 결국 대표에게 물어 봤더니 단박에 쟁점을 찾아 알려준 일도 있다. 특별한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툭 던진 ‘화두’를 좇아 관련 문헌과 판례를 검색해보니 정확했다. 신기한 나머지 동료 변호사에게 말했더니 동료변 왈, ‘신탁’을 받았구나.

호기롭게 개업을 한지 4개월째다. 나름 그동안 배운 서면 작성법과 재판 참석하는 방법을 ‘레시피’로 정리해뒀는데 생각만큼 유용하진 않다. 각 사건들은 의뢰인의 얼굴처럼, 그리고 그들의 사연처럼 쟁점도 제각각이다.

나처럼 ‘선례’의 축적을 체화하지 못한 새내기 변호사는 그럴 때마다 자괴감과 조급함에 빠진다. 언제 즈음 나도 ‘아, 이 사건은 예전에 했던 어떤 사건과 유사하네. 그때 이렇게 해서 승소(혹은 패소)했었지. 그럼 이렇게 대응 해야겠구나’하는 경험이 쌓일까 고민을 한다.

비단 서면이나 재판과 관련된 업무만이 아니다. 의뢰인 상담을 하는 일도 그렇다. 한번은 마냥 의뢰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다가도 안 되겠다 싶어 다음번엔 소송에 필요한 사실들만 듣고 말을 잘라보기도 한다. 사건의 난이도에 관하여 조심스럽게 말하다가도 때로는 자신 있게 말해주기도 한다. 사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처럼, 어떤 태도가 모든 상황에 옳지는 않은 것 같다. 상황에 맞춰서 혹은 하나의 태도로 경험을 쌓다가 이게 맞겠거니 싶은 확신이 들어야 하는데 아직 녹록지 않다.

피의자 신문에 동석하면 만나게 되는, 흔히 말해 경험치 ‘만렙’ 수사관의 능글맞은 태도에 당황하기도 하고, 불구속 피고인이 급작스레 법정구속 됐을 때의 당혹스러움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의뢰인과의 거리를 얼마만큼 두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변호사는 일을 잘해야지 의뢰인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해봤자 스트레스만 받고 오히려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지장이 있다는 선배 변호사들의 조언을 마음속에 새기지만, 어느 순간 우리 의뢰인이 패소하여 돈을 갚아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나, 실형이 선고되어 교도소에 가면 어쩌나 하는 고민들이 불쑥 든다.

결국 시간의 문제이고 경험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자전거를 타다가 몇 번 넘어지고, 소금 간을 너무 해서 찌개를 그대로 버리게 되는 일을 몇 번 겪다보면 자연스레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한강변을 자전거로 드라이브 할 날이, 나만의 레시피를 가지고 뚝딱 한끼의 식사를 만들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가 모는 자전거의 뒤에 탄 의뢰인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의뢰인에게 실패한 음식을 대접하기도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젊음의 장점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경험이란 동전의 뒷면이 타성에 젖어 무뎌지는 노회함이라면, 젊음의 반짝이는 앞면은 열정과 성실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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