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환자들도 그에게 너무 지쳐 보인다고 했다. 환자들이 말했다. “선생님은 좀 쉬셔야 해요. 특히나 정신과 의사는 가끔 쉴 필요가 있어요.” 많은 것을 갖고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도 점점 피곤해졌고 불행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과연 좋은 직업을 선택한 것인가? 나는 행복한가?’ 그래서 그는 병원을 닫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만일 행복의 비밀이 있다면 그 비밀을 꼭 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행복해지기 위한 23개의 비밀’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씨의 행복 여행’ 책 이야기이다.

나도 책 속의 꾸뻬 같았다. 나 역시 많은 의뢰인과 접촉하면서 점점 피곤해지고 지치기도 했다. 의뢰인들은 인터넷에서 찾은 법률지식을 갖고 와 법리를 따지기도 하고, 패소하면 유리한 판례를 못 찾아 졌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나도 꾸뻬처럼 언젠가는 ‘가게’ 문을 닫고 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책의 열 번째 행복의 비밀은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취업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 졸업반 아들과 딸이 아주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아들은 취업은 알아서 할 거니 걱정 말라 하기에 딸에게 졸업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딸은 대학 4년간 매 학기 성적표를 A로 꽃단장했다. 조심스레 로스쿨이 어떠냐고 하자 딸이 대답했다.“아빠는 제가 행복하기를 바라시지요?” “그럼 네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세상에 어느 아빠가 딸 불행하기를 바라겠냐)” “그럼 제가 하고 싶은, 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 것도 바라시지요?” 딸은 뻔한 답을 유도해 반문했다. “근데요, 저는 로스쿨은 아니에요” 했다. 이제부터는 공부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꾹 참고 한번 더 물었다. “좋아하는 일이 뭔데?” 딸은 ‘바람의 딸’ 한비야 같은 삶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한비야라. 그럼 돈은 안 벌겠다는건데…더는 안 물었다.

소처럼 일하면서 안식년, 안식월을 해 본 적이 없다. 소도 농한기엔 쉬는데. 아들, 딸이 취업하면 핑계삼아 안식년을 하고 싶었다. 아들은 조금만 더 참아보시라 하고 딸은 ‘한비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하니 안식년 꿈은 접었다.

재판에 다녀오다 전철에서 친구 변호사를 만났다. 어디 다녀오냐고 하자 요즘 일이 없어 놀다온다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미국 변호사들 꿈이 뭔지 아냐고 했다. 한국변호사들 꿈도 잘 모르는데 어찌 미국변호사들 꿈까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자기는 미국변호사 자격을 따 미국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미국변호사들은 ‘변호사 그만 두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점심 때 동료 여변호사에게 변호사 일 하면서 생긴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녀도 ‘변호사 그만 두고 다른 일 하는 거’란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어쩜 변호사들 꿈도 같구나. 변호사들도 일을 그만두기 위해서 일을 하는가….

초등학교 때 주말 오후엔 어머니를 따라 밭일을 갔다. 어머니는 밭일 갈 때 형제 중에 유독 나만 선발하셨다. 머리가 굵어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어쩌다 밭일가기 싫어 집밖으로 도망치면 어머니는 내 이름에다 ‘놈’자를 붙여 부르시며 타다 만 부지깽이를 높이 들고 동네밖까지 따라와 잡아 갔다. 그 시절은 삼시 세끼 해결이 먼저라 가장인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야속하기도 했다. 하루는 고개를 처박고 밭일 하는데 어머니가 물으셨다. “야야,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뭔지 아냐?” 볼때기가 잔뜩 부어 “밭일!” 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은 다 지 하는 일이 제일 힘든 줄 알고 산당께” 했다. “어무니는 뭐가 제일 힘들어?” 그러자 “느그들 삼시 세끼 밥 맥여 거두는거. 밭일이 좋아서 하것냐” 하셨다.

우연히 TV에서 ‘삼시 세끼’라는 방송을 보았다. PD가 출연자들에게 식재료를 주고 메뉴를 정해주면 하루 세번 밥 해 먹고 치우는 게 거의 다인데도 그 사람들은 밥 해 먹는 것조차도 힘들어 했다. 요새는 밥 해 먹는 거 힘들어 하는 걸로 돈 버는 사람도 있구나. 어릴 적 우리 집 ‘삼시 세끼’와는 다른 희한한 ‘삼시 세끼’였다.

아주 가끔 변호사를 그만 두는 꿈을 꿀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좋아하지도 않는’ 밭일을 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밭일’보다는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좋아하지 않는(?) 일’이 훨씬 낫지 싶다. 어머니가 그때 그러셨다. “가장이 왜 가장인 줄 아냐? 세상에서 ‘가~장’ 힘들어서 가장인거여.” 그래. 힘들다고 가장을 그만 둘 수는 없지. 그래서 나는 꾸뻬가 찾은 ‘행복해지기 위한 23가지 비밀’에 하나를 더 보탰다. “행복은 힘들 땐 가끔 어렸을 적 ‘밭일’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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