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세계무역기구(WTO)는 출범 20주년을 맞이했다. 금년 12월에는 제10차 WTO 각료회의가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올 한해 동안 WTO는 출범 20주년 기념행사, DDA 작업계획 수립, 신규 회원국 가입협상, 각료회의 준비 등으로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연말 각료회의를 앞두고 회원국들은 14년간 지속 중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어떻게든 진전을 이뤄내고자 다양한 경로의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

현재 진행 중인 DDA 협상은 WTO가 낳은 최초의 다자간 무역협상이다. DDA 협상은 2001년 11월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 각료회의에서 정식 출범했으며, 농업, 비농산물, 서비스 시장의 개방, 반덤핑 등 다자간 무역규범 개선, 지적재산권, 환경 등 무역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협상의 목표는 무역자유화를 더욱 진전시키고 무역행위를 관장하는 다자 규범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분명하나, 협상에 참여하는 회원국들의 수(WTO 회원국은 161개국)와 각국의 복잡한 경제적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칼로 무 자르듯 단칼에 협상을 마무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출범 당시의 목표대로라면 DDA 협상은 2004년 말까지 마치도록 되어 있었으나, 관세 및 보조금 감축방식 등을 놓고 회원국들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협상시한을 넘겼고, 2008년 7월 잠정타협안이 제시되었으나, 인도, 중국이 농산물 분야 개도국 특별세이프가드 등과 관련한 동 타협안의 수용을 거부함에 따라 합의에 실패하고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DDA 협상 장기표류로 다자무역체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인식하에 2011년 제8차 WTO 각료회의에서 DDA 협상 의제 중 합의 가능한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협상 진전을 도모하기로 합의하고, 2013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DDA 협상 의제 중 무역원활화, 농업 일부, 면화, 개발·최빈개도국 등 4개 분야로 구성된 ‘발리패키지’를 타결했다. 이와 더불어 잔여 DDA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작업계획 마련에 합의하고 금년 7월 그 시한을 앞두고 있다. 올 1월 다보스 통상장관회의에서 작업계획 관련 실행가능성을 고려해 목표수준을 조정하자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농업, 비농산물시장접근, 서비스 등 3대 협상분야를 중심으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등 선진국들과 인도, 중국 등 신흥개도국들 간 농업 보조금 감축 논의가 전혀 진전이 없자 다른 협상 분야에서의 논의 역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즉 농업 보조금 이슈는 다른 문제 논의를 위한 선결 이슈가 된 것이다. 농업 보조금 관련, 미국은 신흥개도국들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무역왜곡보조금을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인도, 중국 등은 개도국 우대가 포함된 2008년까지의 기존 협상 결과를 존중할 것과 자신들의 추가 의무부담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기존 협상 결과에 따르면 많은 농업 보조금을 감축해야 하는 반면, 공산품 등 시장접근 분야에서는 별다른 이익을 볼 수 없는 미국으로서는 DDA 협상 타결보다 TPP, TTIP 등 거대 지역경제협정 및 FTA 등을 체결하여 무역시장 확보를 추진하는 것이 유리한 입장임은 자명하다. 최근 통과된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법안도 DDA 협상을 타깃으로 했다기 보다는 TPP, TTIP 또는 WTO 복수국간 협상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인도, 브라질 등도 미국이 농업 국내보조에서 희생 없이 신흥국 시장 확보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농업 보조금 문제 해결 없이는 시장접근 등 다른 분야 논의가 무의미하다고 외치고 있다. 7월 작업계획 수립 시한이 불과 3주 정도 남은 현재에도 농업 국내보조 문제에서의 돌파구 마련이 여전히 요원한 상태로, 작업계획 수립이 7월 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매우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WTO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목표수준을 낮춰 협상을 타결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단순화 및 실행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농업·비농산물 시장접근과 관련해서는 우루과이라운드와 유사한 평균관세감축 방식에 대해, 그리고 농업 국내보조와 관련해서는 노르웨이, 호주, 캐나다 등의 새로운 제안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네바 협상가들의 눈은 이제 나이로비에 맞춰지고 있다. 7월 작업계획 시한을 놓친다면 자연스레 나이로비 각료회의가 새로운 시한이 될 것이다. 목표수준을 낮춰 실행가능 하면서도 다소 의미 있는 방안에 회원국들이 합의한다면 나이로비에서 작업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DDA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각국이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내할 의향이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 될 것이다.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이 늘 얘기하듯, 나이로비 각료회의가 DDA 협상 타결의 도약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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