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신문 ‘청변카페’에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한동안 망설였다. 내가 과연 청년변호사들의 고충과 애환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인가. 33살에 변호사가 되었으니 나이만 보면 청년은 맞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자신을 ‘청년변호사’로 부르지 못했다. 소위 ‘대형펌’이라 불리는 곳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변호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지난 2년간 서초동에 있는 또래 변호사들의 고충을 공감하지 못하였다. 연수원 반, 조모임을 해도 현장의 분위기에 둔감했다. 그 자리에는 취업이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 불안한 지위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웃고는 있지만 동료들의 표정 한 구석이 그늘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의한다고 했으나 나의 언행이 냉혹한 현실 속에 있던 동료들에게 어떻게 비쳤을지 이제 와서 신경이 쓰인다.

청년변호사는 누구일까.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짧으면 청년변호사일까. 청년변호사라는 말에는 사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스며들어 있다. 그 느낌의 실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변호사의 지위, 그에 따른 ‘결핍’이다. 변호사가 과잉 배출되는 시대를 상징하는 아픔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평등하게 ‘변호사’라는 호칭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다 같지 않다.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 같다. 입시시절과 평준화시절을 알게 모르게 구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청년변호사들은 영광이 단절된 뺑뺑이 세대라고 보면 된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결핍된 집단이다. 줄어드는 소득, 불안정한 자리, 잦은 이직, 존중받지 못하는 지위, 먹구름 같은 미래…. 청년변호사들의 피부에 거칠게 와 닿는 말이다.

서울에서 2년간 근무를 마칠 무렵인 작년 말 나는 이직을 준비하였다. 그때 마침 대한변협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의 캠프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후보자의 수행원으로 전국을 다니며 청년변호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직원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챙기던 변호사, 개업하였으나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힘들어하던 변호사, 사무장인지 변호사인지 구별하기 힘든 자리에서 일하는 변호사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올해 2월 서울 한복판에서 강원도 작은 도시로 이직을 하였다. 이제 특별할 것 없는 지방 개업변호사가 되었다.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는 내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여기서는 모든 과정을 사소한 것부터 직접 챙겨야 한다. 변호사 3명이 사무원 1명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복사, 전화, 문서출력, 청소까지 내가 직접 하고 있다. A4 용지, 전기세, 관리비 등도 자비로 준비해야 한다. 법원과 검찰청에 서류를 제출하러 가면 사무직원으로 오해를 받는 일도 잦다. 보호막이 사라진 느낌이다. 청년변호사로서 일상에서 결핍을 체감하고 있다.

때로는 근처 개업변호사들과 서로의 고충을 나누기도 한다. 작년에 개업하여 6개월간 겨우 6건을 수임하였다는 변호사의 이야기도 듣는다. 비용절감을 위해 직원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동료인 청년변호사들의 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되기 시작했다. 곧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겠구나 싶어서 긴장이 된다.

청년변호사들의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맞다. 다만 현재의 결핍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장 바뀔 현실이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손해볼 것은 없지 않을까. 결핍이 부족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믿어보자.

‘결핍을 즐겨라’라는 책에서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사는 것이고, 삶이란 결핍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도 결핍과 목마름이었다. 법학을 전공했음에도 법에 대해 무지한 채로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전문적 지식이 결핍되어 늘 불안했다. 공무원이라는 제한적 역할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적극적 역할을 하고 싶었다. 결핍이 도전의 계기가 되었다.

오늘도 아침에 출근하니 정성스럽게 손으로 쓴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교도소에 수용 중인 피고인이 쓴 편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로 시작되는 편지를 읽으며 뿌듯함을 느낀다. 종전에는 느낄 수 없던 기쁨이다. 피고인을 한번이라도 더 봐야겠다는 생각에 또 다시 접견신청서를 준비한다. 첫 직장에 비해 이곳 사무실은 여러 가지로 열악해졌다. 하지만 나를 채우는 보람은 커졌다. 변호사로서 내 존재 가치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래서 이곳으로 오길 잘한 것 같다. 청년변호사들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그래도 견디고 희망을 갖는 것은 다른 직업에서 쉽게 얻지 못하는 보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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