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연재끝난 칼럼
[변호사의 法情]상대방 대리인에 대한 예의
이영진 변호사  |  yjlee@kangholaw.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549호] 승인 2015.07.05  14:53:1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상대방 대리인은 같은 사건을 가지고 공방을 벌일 적대적 관계이자 사건 진행을 함께 해 나갈 협력자적인 관계에 있기도 하다. 특히나 사건이 조정이나 합의로 끝나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사건이든 본질은 분쟁이므로,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도 치열한 물밑전쟁은 수반된다. 칼 대신 펜과 혀를 휘두른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 치열함은 전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만 정해진 규칙이 있어 외견상으로는 모든 전투가 매우 예의 바르고 차분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실제 전투와는 다행스럽게도 상당히 다르다.

필자가 전투에서 만났던 상대방 대리인들은 대체로 다 점잖고 성실하고 예의바른 분들이었다. 딱 이 분만 빼고 말이다.

그 사건도 조정으로 끝나면 참 좋을 사건이었다. 다만 양측의 견해차가 커서 좀처럼 조정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았다. 전문조정위원의 조정에 회부되었다가 다시 정식재판으로 돌아와 몇번 기일을 진행하였다. 그 사이 증거조사 할 거 다 했다. 이제 결심하고 판결선고기일만 잡히면 상황. 그러나 관련 사건이 합의부에 계속 중이고, 그 사건 결과가 우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보니, 그 사건 결과를 보기 위해 기일추정되기에 이르고, 다시 속행되기까지 계절이 두번 바뀌고 약 9개월여 시간이 흘렀다. 다시 속행된 기일. 부디 오늘로 변론종결하고 제발 우리 쪽에 살짝 우호적이면서 객관적인 판단을 해 주실 요량으로 판결선고기일을 잡아주십사 은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담당판사님의 마지막 조정 권유! 이번엔 진짜 마지막으로 법정외에서 양사 대표 내지 책임자가 만나 허심탄회하게 한번 대승적인 합의를 해보라는 것이다! 조정을 위한 만남을 가질 기한도 꼼꼼히 정해주시고, 조정을 위한 만남에 대한 보고서를 다음 기일 전까지 제출하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듣고 법정을 나섰다.

그래 뭐 또 갑자기 조정이 될지 누가 알아? 한번 만나 보는 거지 뭐. 조정을 위한 미팅일정을 잡기 위해 먼저 연락을 주겠다던 상대방 대리인은 몇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상대방 대리인에게 전화를 했다.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겨우 연결이 되자, 이번엔 다음 기일 전에 미팅을 가지기엔 시간이 촉박하니 기일을 변경하여야겠으니 동의를 해달란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서로 협조해야지.

또 다시 시작된 기다림. 1주, 2주 또 시간은 가고 아무런 연락이 없다. 분노조절을 위한 쉼호흡을 몇번 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낯선 목소리의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담당변호사를 찾자 그 분은 인사이동으로 다른 곳으로 갔다며 바꿔준다. 어렵게 연결된 그 분. 자기가 다른 담당부서로 발령이 나서 이 사건은 다른 분이 담당하게 되었다.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다.

그런데 또 연락이 없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또 전화를 했다.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담당자라고 한다. 우리 위치 알려주고 적당한 곳으로 약속장소 일시 잡아서 연락달라고 하고 끊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우리 위치까지 알려주었건만, 중간 지점도 아닌 자기네 사옥으로 오란다. 예의상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으니 알아서 연락 달라고 한 내 잘못이지. 아무튼 그 날은 왔다. 아침부터 마른 번개가 치고 변덕스런 날씨. 우리쪽 회사의 대표님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가시고 나만 홀로 택시를 잡아타고 목적지인 상대방 사옥으로 달려갔다. 빗길에 1시간 좀 못 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사옥 1층의 카페. 메뉴판을 내밀며 음료를 주문하란다. 자몽주스를 시켰다. 명함을 주고 받고 자리에 앉자, ‘자기들은 합의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순간 한 모금 머금은 자몽주스를 뿜을 뻔 했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그럼 미리 전화를 했으면 내가 빗길에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을 것 아니냐, 이게 지금 뭐하자는….

“이런 얘기는 전화로 드리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오시면 얼굴 뵙고 말씀드리려고 기다렸습니다.” 육두문자가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바로 택시를 타고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되돌아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 기분 이 느낌 사그라들기 전에 준비서면을 적자. 담당판사님에게 제출할 법정외 조정노력에 대한 보고서였다. 내용은 초등학생이 담임선생님께 나쁜 친구 고자질하는 것 같은 유치찬란한 내용이다. 그 유치한 서면 제출을 끝으로 변론은 종결되었고, 다행히 우리는 전부승소에 가까운 일부승소를 했다. 전부승소에 가깝다고 해도 우리 의뢰인은 받아들이기 어려워 항소를 고민하던 찰나, 상대방이 항소를 했다.

나는 그 지긋지긋한 대리인의 얼굴을 항소심 변론기일마다 봐야 한다. 법정을 나서며 서로간에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행여 마주치기라도 하면 눈에서 전자빔을 쏘면서.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기자의 시선]“5공 때도 안 그랬다”
2
‘젊은 변협’ 첫 개혁위로 ‘자율개혁’ 시동
3
2019 IBA 서울총회 참관기
4
[특별기고]변호사 공익활동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5
2019 IBA 서울총회 참관기
Copyright © 2019 대한변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