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내가 살던 집에는 부엌 뒤로 장독대가 붙어있었는데, 장독대 위의 나즈막한 담 너머에는 바로 뒷집 장독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두 집이 서로 부엌 뒷문을 열면 테이블처럼 장독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볼 수 있어서, 두 집의 어머니들은 거의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사이좋게 지내셨고, 나와 동갑내기 뒷집 장남 N도 너댓살 무렵부터 곧잘 어울려 놀았다. 따뜻한 날 마당에서 장난감 그릇에 흙밥을 퍼놓고 꽃잎과 돌멩이 반찬을 담아 놓으면, 옆구리에 그림책을 끼고 회사 갔다 왔다며 돗자리에 올라 앉아 밥 먹는 시늉을 하던 N이 간혹 생각나곤 한다.

N과 나는 그렇게 수년간을 같이 놀다가, 같은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첫해를 매일 함께 걸어 등하교했다.

국민학교 2학년, N과 나는 같은 반이 되었다. 학년 초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반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 이름을 써내라 하시기에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 냈었다. 그리고 그날도 수업이 끝난 후 N과 함께 학교를 나섰다. N이 내 손을 잡아당기며 가만히 물었다.

“오늘 제일 좋아하는 친구 이름 너 썼는데. 넌 누구 썼어?”

나는 N이 내 이름을 써주었다는 말에 마냥 좋아 헤벌쭉 웃으며 얼른 대답하고 말았다.

“어, 정말? 난 네 이름 안 썼는데….”

내 대답에 N은 생뚱맞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더니,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N은, 아침에 집에서도, 수업 후 학교에서도, 나를 찾지 않고 혼자 가버렸다. 어쩌다 함께 길을 걷게 되어도 통 말이 없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N과 나는 조금씩 멀어져 갔고, 나는 뭔가 찜찜하면서도 N이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국민학교 3학년 초, 집이 이사를 하면서 나도 다른 학교로 전학을 했고, 이후 오래 동안 N을 보지 못하였다. 집이 멀어지면서 어머니들끼리도 소식이 끊겼다. 하지만 이후에도 나는 가끔 N과, N을 화나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난 네 이름 안썼는데…’하는 고지식한 대답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때 그냥 나에게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더라면 바로 N이라고 대답했을 텐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던 N을 당연히 항상 함께 할 친구로 여겼던 나는, 새학년의 ‘좋아하는 친구’는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친구’라고만 생각했었다.

세월이 더 흘러 대학을 졸업한 후, 길을 가다 우연히 N의 어머니를 만났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지만 N의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고 반겨주셨다. 길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떠나왔는데, 나중에야 생각해보니 연락처를 받아오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문득 N이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궁리 끝에 모 대학 교수로 계시는 N 아버지의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서, “N을 만나고 싶다” 하였다. N의 아버지도 N의 어머니만큼이나 나를 반기시며 흔쾌히 N에게 전하겠다 하셨다.

그렇게 15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소꿉친구 N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압구정동의 어느 식당에서 다시 만난 N을 나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알아보기도 어려웠던 N과 15년이나 되는 시간의 공백을 넘어 대화를 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다시 만난 N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모습과 아무런 유사점을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가량의 짧은 만남은 서먹하기 그지없었고, 눈앞에 있는 낯선 청년에게 15년 전의 내 무신경함을 사과하지도, 얼마나 긴 시간을 생각하였는지도 끝내 털어놓지 못하였다. 내 기억 속 열살 소년은, 내 마음을 듣지 못한 채 과거로 꽁꽁 숨어버렸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나의 기억이 아닐까. 실상 우리가 아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람과 나눈 시간, 관계에 대한 기억뿐이다.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N이 내가 아는 N과 다른 존재였던 것은, N과 나의 관계, 내 기억이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탓일 게다.

그래서 도척도 친구가 있고 공자도 적이 있다. 그들이 대하는 사람이 다르고 관계가 다르고 사람들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에게 천사 같은 사람이 나에게는 적이 될 수 있고, 남에게 악마 같은 사람이 나에게는 은인이 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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