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한용운 시인의 ‘인연설’과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 같은 가슴아린 러브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그지없이 좋은 소재이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청년변호사카페(‘청변카페’) 칼럼에 걸맞은 인연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2008년 로스쿨 입학준비를 시작한 이래 길지도 짧지도 않은 7년 동안 나는 북쪽에서 또는 동쪽에서 참으로 많은 귀인을 만나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재주에 비해 과분한 대우를 받고 소중한 기회를 가졌던 것 같다. 그 분들 모두에게 크나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지면관계상 두 가지 재미난(?)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변호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법이라곤 죄수론이 ‘죄수(Prisoner)’에 관한 학문이겠거니 짐작이나 할 줄 알았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로스쿨 1학년을 보내고 가까스로 2학년이 되었을 때, 각 기관이며 로펌들은 처음으로 로스쿨생을 상대로 한 다양한 실무수습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탐이 났지만 지방대 로스쿨에 적지 않은 나이로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 곳이 있었다. 이름하야 대형로펌. 그저 내 것이 아니려니 하는 마음에 바라만보다가 기회를 놓쳐버리고 시간은 흘러 3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그리고 그 로펌에서는 전년과 동일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보기에도 매력적인 색감의 포스터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전국의 로스쿨생이 건국 이래 최초의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며 열공모드에 돌입하는 시기에, 그 멋진 포스터의 매력에 홀랑 정신을 빼앗긴 나는 3학년은 하지 않는다는 실무수습이란 것을 그것도 변호사시험과목과는 전~혀 무관한 팀에 지원하였고 아주 운이 좋게 합격했다. 어찌나 기쁘던지 같은 조원들 그리고 팀장님을 비롯한 다른 변호사님들과 함께 2주간의 시간을 만끽하며 열심히 인턴십을 마쳤고 그해 겨울 나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인턴십을 하면서 쟁쟁한 실력의 다른 로스쿨생들을 보며 나는 아직 이 분야에 진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걷고자 했을 때, 또 다시 대한변협 취업정보센터에서 그 매력적인 분야를 접할 수 있는 채용공고를 보았고 나는 뭐에 홀린 듯 지원하고 면접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인턴십을 한 그 팀의 변호사님들께서 면접관으로 앉아계신 것이 아닌가. 결과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또 다른 인연얘기다. 지금은 내가 모시고 있는 상사이자, 우리 로스쿨 교수님이셨던 존경해 마지않는 한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 분과의 인연은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쿨 교수님이셨지만 나는 이분의 성함만 알고 있을 뿐 수업 한번 들은 적이 없고 일면식도 없었다. 하지만 로스쿨 2학년 때 후배들과 중재대회를 준비하며 지도교수님이 주신 전화번호로 무턱대고 전화를 드린 것이 인연이 되어 교수님께 지도를 받게 되었고 또 능력있는 후배들 덕분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 후 교수님의 지도학생들과 모임을 주재하기도 하고 합격 및 취업 등 간간이 근황을 전해드리며 인간적인 교제를 나누던 중 2014년 신년모임 때 교수님께서 이직을 제안하셨다. 나보다 더 어리고 훌륭한 남자(?) 후배들이 있었는데도 나에게 그런 제안을 해주셔서 황송했다. 사내변호사 그리고 외국계회사라는 정보밖에 없었던 나는 서울회의 회사법 연수원을 수료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는 등 5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그해 여름, 대기업 사내변호사에 공채로 당당히 합격하여 지금은 교수님과 같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빽’이 있어야 한다고. 로스쿨 입학부터 실무수습, 로펌 취업까지 학연, 지연, 혈연 심지어 사돈에 팔촌까지 연결고리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나 평범한 친구가 소위 좋은 자리에 가는걸 보면 무턱대고 ‘빽’이 있어서라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부정하지 않겠다. 우리는 ‘빽’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런 ‘빽’을 ‘인연’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런 ‘인연’을 만드는 것 또한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위에서 말한 나의 귀인들과 학교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평범한 공무원 출신인 우리 아버지가 아시는 법조인이라고는 (내가 아는 한) 한명도 없다.

우리 후배들 그리고 함께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동료 청년 변호사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들이 가진 ‘빽’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 시간에 나만의 둘도 없는 소중한 ‘빽’을 만들어 보자고. 그 ‘빽’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진짜 ‘빽’이 될지, 그냥 ‘지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둘 중에 어느 것이든 내 인생의 귀하디귀한 ‘인연’이 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

(강조를 위한 표현일 뿐 나는 절대 나의 사랑하는 지인들을 이런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음을 맹세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고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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