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최고법원 법관인 대법관의 구성은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양성을 확보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의 ‘양심’은 법적인 소양을 갖춘 법관으로서의 직업적·객관적 양심이라고 해석되고 있으나, 이는 매우 추상적이고, 과연 모든 법관에게 일관된 직업적·객관적 양심이 존재하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오히려 어떤 법관이 자신은 진정으로 직업적·객관적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자신이 겪어 온 사회·경제적 환경과 경험 및 학습 등에 의하여 형성된 주관적 사고가 직업적·객관적 양심으로 둔갑하고,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만약 어떤 법관이 자신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부분이라 하더라도 학습과 노력에 의해 관점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한다면, 그것은 대부분 또 하나의 오만이 될 뿐이다.

우리 국가·사회 공동체는 처해 있는 경제적·사회적 환경이 저마다 다르고 생각과 경험이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들 사이에 분쟁이 생겨나면 최종적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심판을 담당한 법관들이 공동체의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심판에 반영하지 못한다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법원을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고, 이는 곧 공동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져 국가 사회안전망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심판을 담당한 법관들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애써 구축한 이 사회의 안전망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에게 공정성·청렴성, 직무수행의 성실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관은 그런 소극적 조건 외에도 정의감, 인간애, 비편협성, 높은 수준의 균형감각 및 논리력 등 적극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법관이 정의 관념에 맞는 판결을 선고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법관은 국민의 권리 구제를 위한 최후 보루 및 통일적 법령 해석 기능을 수행하는 대법원에 소속된 최고위 법관으로서, 일반 법관보다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 즉 우리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가치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넓은 이해력, 특히 소외된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마음과 보편적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과 이해력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관 각자가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다는 것이 쉽지 않고 또한 그 갖춤 여부를 일일이 검증하기도 쉽지는 않으므로, 결국 대법원 전체가 우리 사회공동체의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반영할 수 있도록 대법관의 구성을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법관의 구성을 다양화 하려면, 우선 법관순혈주의에서 벗어나야 하고, 기본적인 조건을 충분히 갖춘 후보 중에서, 출신·성별·경력이 골고루 구성되도록 대법관을 선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법관 후보군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다양하게 고려하여 보수·진보·중도 성향이 조화되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구성되도록 대법관을 선출할 필요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보수·진보·중도 성향의 판단에 모호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보편적인 평가 방법·지표 및 예비후보에 대한 설문을 개발하여 예비후보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고 다양한 평가위원들을 선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계량적인 평가를 하게 한다면,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매뉴얼로 만들어 계속 시행한다면, 대법관의 구성이 전부 바뀌는 6년 후에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완성될 것이다.

최근 대법관은 100% 법관 출신이었다가 지난 5월에 검사 출신인 박상옥 대법관이 취임하여 법관 출신 일색에서는 약간 벗어났지만, 보수 성향 관료 출신이 한명 보태졌을 뿐이어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법관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수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날이 갈수록 관료화되고 있는 법원의 인사 시스템 속에서 진보 성향을 갖거나 그에 가까운 법관이 대법관까지 승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대법관 후보군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다양하게 고려하여 보수·진보·중도 성향이 조화되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구성되도록 대법관을 선출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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