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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단상]탄원서
최창호 대전고검 검사  |  cchch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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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승인 2015.06.15  1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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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에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은 진정서의 형식으로 서면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이 많다. 재판부에 할 말이 있으면 탄원서의 형식으로 글을 써 내기도 한다. 피고인의 가족 등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내용의 탄원서는 자주 등장한다. 가끔 피해자 측에서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기도 한다.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탄원이란 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말하는데, 탄원하는 글이나 문서를 탄원서라 한다.

며칠 전 기록을 읽던 중 피해자의 유족이 낸 탄원서를 읽다가 와락 울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공직에 있던 피해자의 배우자가 제출한 탄원서였다. 자신을 만난 후 직장을 구하기 위하여 공무원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가족을 위하여 공직을 담당하면서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근무하다가 가슴 아프게 생을 마감하게 된 사연이었다. 오버랩되는 많은 얼굴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하여 가족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으며 향후 인생이 완전히 암흑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아들, 형, 배우자, 아버지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한 사람의 빈자리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가해자를 용서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어떻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지난(至難)한 일이다. 가슴이 있는 이에게 망각은 어렵다. 사람들은 언론을 떠들썩하게 사회를 뒤흔들었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냥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을 영원히 생생하게 기억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인간에게 기억의 용량이 충분하지도 못하므로 망각이라는 것이 시간과 함께 참으로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과거가 현재의 무덤을 파게 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잊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과거를 다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든다.

피고인은 반성문을 쓰고, 불우한 환경과 성장기의 가정사를 현출하며, 탄원서를 내면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정상 참작 자료를 계속 제출하기도 한다.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인다. 세상은 평평하지 않다. 바르게 산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결과가 좋아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꼭 실현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수많은 피고인들의 최후 변론을 들으면서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철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재판의 마지막까지 공소사실이 잘못된 것이고 죄가 없다면서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이, 가사 재판부에서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취지의 변론을 하는 것을 들을 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죄가 없으면 무죄인 것이고, 죄가 있다는 판단을 받으면 부인하는 만큼 오히려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재판에서 재판장은 피고인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피고인은 법대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꺼내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피고인의 말을 듣는 순간 짧은 그 말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신의 자유가 제약된 피고인이 가장 회복되기를 갈구하는 헌법상 기본권은 신체의 자유가 아닐까. 한 개인의 삶과 수감생활 동안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을 녹여서 마지막으로 진술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인생의 절규가 스며있다. 이번 재판이 대나무의 마디처럼 피고인에게도 지나간 인생을 말끔하게 마무리하는 마디가 되기를 기원했다.

하늘과 땅은 이름 없는 꽃을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나 존재의 의미가 있고, 부여받은 소명이 있다. 그것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사건 관계인들이 제출하는 탄원서에는 추상적 인간이 아닌 구체적 인간의 존재에 대한 애끓는 사연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있다. 남들에게는 물론 스스로에게조차 부끄러운 이야기, 아물어가는 상처를 건드리는 사연,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이해하기 어려운 말 등 다양한 내용들이 탄원서에는 들어있다. 스탠드의 불을 켜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들리는 사무실의 책상에 앉아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것처럼, 종이에 적혀있는 사건 관계인들의 사연을 야금야금 읽어본다.

공직을 맡아 잃은 것과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업무가 많아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는 대답과 배운 것을 날마다 실천해 학문이 늘었다는 상반된 대답이 있을 수 있겠다. 서적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통하여 배우고 느끼며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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