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아주 어릴 적 ‘홍콩할매 귀신 괴담’에 오싹했던 기억이 있다. 반인반묘(半人半猫) 모습을 한 할머니 귀신이 밤마다 거리에 나타나 어린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괴상한 이야기다. 소싯적 괴담 얘기를 꺼낸 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관련한 괴담들 때문이다. 5월 20일 국내에서 한명의 환자가 메르스 확진을 받은 뒤 메르스 감염자는 87명(6월 8일 현재)까지 늘었다. 감염된 이들 가운데 숨진 사람도 6명이나 된다. 첫 발병 환자가 나온 경기 평택에서부터 전국 각지에 환자가 속출하면서 위기감이 점점 커졌다. 이렇게 공포가 이어지는 동안 메르스에 대한 괴담이 하나 둘 퍼지기 시작했다.

기자는 며칠 전 한 지인에게서 ‘증권가 정보지(찌라시)’ 형식의 글 하나를 받았다. ‘지방의 한 병원에 메르스 환자 3명이 입원해 있으니 그 병원에 가지말라’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많은 찌라시가 돌았다. 메르스 감염자가 입원했다는 병원 목록에서부터 ‘접촉으로도 감염되는 것을 넘어 공기를 통해서도 감염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물론 대부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거나 사실과 다른 것들이었다.

그러자 법무부는 지난 5일 오전 급작스럽게 메르스 관련 브리핑을 열어 “허위사실이나 괴담을 유포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근거 없는 허위사실과 괴담 유포가 국민 불안을 고조시키고, 사회혼란을 야기하며, 정부의 질병 관리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2008년 ‘광우병 괴담’, 이듬해 ‘신종플루 괴담’ 등은 인터넷 블로그 등을 기반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도 마찬가지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글이 혼란을 불러왔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이런저런 음모론이 빠르게 확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런 괴담의 확산 속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라면 괴담 유포자의 죄질이 ‘엄벌’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더 나빠졌다고 볼만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전파력이 강한 매체 탓에 메르스 괴담이 빠르게 번지는 것만 같지는 않다. 정부가 제공하는 메르스 관련 정보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언제 내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 싶다.

실제 정부는 첫 확진자가 나온 지 18일 만에야 감염자가 발생하고 이들이 경유한 병원 명단을 공개했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까지, 또 그 이후로도 국민은 정부 발표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정체 모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정부 발표 내용마저도 일부 오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메르스 확산 통제’를 자신하면서 국민을 안심시키려던 정부가 스스로 국민 불안을 불러온 꼴이다.

중국에서도 2007년 ‘메르스 괴담’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돼지고기에 화농성 뇌염 바이러스가 있다”는 악성 루머가 번졌다고 한다. 매 끼니마다 돈육을 즐겨 먹는 중국인들에게 이런 소문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중국 정부가 뒤늦게 진화에 나섰지만, 풍문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은 모양이다. 당시 중국에서 잇달아 먹거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국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불신이 괴담 소동을 불러온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었다.

홍콩할매 귀신 괴담도 어처구니없는 얘기였지만,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홍콩할매가 잡아간다”는 어른들 말에 아이들은 귀가를 서둘렀고, 괴담 탓에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 사례가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0년대 중후반 잦은 유괴 사건이나 야간 치안 불안 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괴담을 믿게끔 했던 것도 같다.

메르스 괴담이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어떤 괴담이든 유포하는 행위 자체는 옳지 않다. 하지만 모든 괴담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먼저 돌이켜보는 게 위정자의 자세였으면 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법으로 다스리겠다”며 겁 주는 것이 정부로서 불안을 잠재우는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조선 27대 왕 순조는 백성들과 소통하지 않는 ‘은둔의 왕’이었다고 한다. 당시도 괴질이 퍼져 수십만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역병이 돌자 왕과 조정을 비방하는 ‘유언비어’가 쏟아졌고, 조정은 “참서(讖書·예언서)와 요언(妖言·요상한 말)을 퍼뜨리는 사람은 참형에 처한다”며 엄벌했다.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었지만, 괴담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민심은 이반했고, 국운도 쇠했다. 불안에 떨고 있을지 모를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선 뭘 해야 할지 옛 사례를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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