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체질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로 일한지 어느덧 3년째가 되었다. 처음 변호사로서 배지를 달고 법정에 섰던 일, 상담하러 온 의뢰인에게 명함을 내밀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때가 불과 어제 같다. 신입의 어색함이 점차 사라지면서 처음 느낀 것은 변호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 보다는 변호사 직역의 매력이었다. 생각보다 자유로웠고, 무엇보다 일이 재밌었다. 연수원 기록과 달리 진짜 세상 속 사건은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다. 무의미하게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기며, 어디 놀러갈까만 궁리하던 내가 기록에 묻혀서 야근을 하고, 준비서면을 쓰면서 밤을 새고 있었다. 내가 적당히 느긋하게 일할 것을 예상했던 친구들은 내 얽매인 모습을 보며 놀리기까지 했다.

3년차 변호사로서 부족한 경험과 시간 속에서도 변호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낄 만큼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이 몇 있다(물론 그만두고 싶다고 소리친 일도 자주 있다).

하나는 처음으로 승소 판결을 받았을 때다. 의뢰인은 펜션 부지의 토목 공사를 한 공사업자로,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자 해당 토지에 유치권 신고를 하였는데, 채권자인 은행이 유치권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 일주일에 1~2회 해당 토지를 왔다 갔다 한 정도로 유치권의 점유가 인정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을거라고 이야기했다. 의뢰인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끝까지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공사업자 여러 명을 불러 증인신문을 하였고, 재판부에 감정으로 호소했다. 공사현장에 가서 동영상을 찍어 씨디를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의뢰인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유치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되었고, 상대방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확정되었다. 직원과 함께 소송결과를 보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뜻밖의 의뢰인과 만났게 되었을 때다. 어느 날 갑자기 펌에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그날은 재판이 있어서 내가 자리를 비웠는데, 직원이 어떤 사람이 연락처를 남기고 갔다고 했다. 본인 사건 앞 시간에 내가 했던 증인신문을 보고 사건을 맡기러 왔다는 것이었다.

신입변호사 때는 사실관계도 잘 모르고 무얼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의뢰인 요구는 뭐든 들어주었고, 의뢰인과 사건 현장에 여러 번 찾아가기도 했다. 상대방의 불법행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의뢰인 소유의 건물을 찾아간 것인데, 여전히 불법행위가 이뤄졌고, 의뢰인은 나와 의뢰인, 증인과의 대화를 녹음했다. 이를 녹취록으로 만들어 증거로 제출하고, 제시하면서 증인신문을 진행했는데, 녹취록 안에는 변호사인 내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 증거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몰래 녹음을 한 것이라 증인은 불법증거라고 화를 냈고, 나도 상대방이 이의를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워 말도 더듬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신입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의뢰인은 그것을 보고 열심히 할 것 같다면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내가 원하는 증언도 나오지 않았고, 증거가 부족하여 결과 예상이 힘들지만, 그 사건의 결과가 어찌되었든, 서툰 증인신문이 뜻밖에도 나의 첫 의뢰인을 만들어준 연결고리가 되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변호사로서 살아가면서 즐겁고 자랑스러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고, 이걸 읽는 청변들 역시 변호사로서 즐거웠던 때나 보람있는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

요즘 주변 동기들이나 청년변호사들과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자기 회사 분위기, 상사 및 회사 동료 이야기로 시작해서 연봉, 열악한 업무환경, 고용 불안정성, 변호사 직급의 하락 등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포화상태인 변호사 시장과 막연한 미래에 함께 불안해하는 자신을 상기하고 대화를 마무리 짓곤 한다.

지금 변호사로서의 대우가 우리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청변들이 더욱 한 목소리를 내고 똘똘 뭉쳐 해결해 나가면 되고(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고민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골몰해서 직업적 회의나 무력함까지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호사로서의 삶이 생각보다 고되기는 해도 이만큼 재미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 세상이 너무 금방 바뀌니까 변호사 시장도 어찌 변할지 예측하는 것도 힘들고, 미리 걱정하는 것도 의미 없다. 의외의 행운이 생기기도 하고, 한순간의 방심으로 일이 꼬일 수도 있다. 소송이든, 인생이든 말이다. 청변들에게 수많은 이야기와 끝없는 모험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좋아하는 미국밴드 파라모어의 노래가사로 글을 마칠까 한다.

Ain’t it fun? Living in the real world(재미있지 않니? 진짜 세상에서 사는 것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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