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정어머니께서 종합검진결과 갑상선에 암이 있다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암이라는 말에 무조건 겁부터 나고 갑작스레 인생의 큰 짐을 떠안은 것 같아 세상이 순간 잿빛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마침 최근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갑상선암에 대한 논의들을 방영한 것이 있어서, 갑상선암은 성장이 매우 느리고 전이도 잘되지 않아 ‘착한 암’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어느 평일 오후, 1시 30분에 예약을 했지만, 영상자료가 올라오지 않아 다른 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먼저하고 우리 가족은 10분, 20분을 조금 더 기다린 끝에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만나게 된 의사선생님은 아직 마흔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외모의 젊은 분이셨는데, “아직 영상자료가 올라오지는 않았습니다만, 걱정하면서 기다리시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나 싶어 들어오시라 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나중에 영상자료를 보면서 말씀 드리고, 검사결과지의 내용만으로 우선 대략적인 설명을 드리도록 할게요”라는 말로 진료를 시작하셨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따뜻한 말 한 마디, ‘걱정하면서 기다리시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나 싶어’라는 말은, 그간의 걱정과 불안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고, ‘의사선생님이 우리 일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세세한 설명들이 이어졌고, “더 궁금한 것이 있냐”는 질문에 “하도 자세하게 설명하셔서 물어보려고 했던 것들은 다 나왔네요”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의사선생님의 친절한 진료에 우리 가족은 수술과 치료에 관한 어려운 결정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30대 중후반의 의사. 어떻게 보면 경험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지만, 그의 친절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지자 점점 신뢰감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변호사도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친절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똑똑하기보다는 친절한 편이 더 낫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은, 늘 똑똑할 수만은 없는 변호사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친절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의 입장으로 돌아와, ‘나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의뢰인과의 대화에서 쟁점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에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고 결국은 끝까지 듣지 않고 말을 자른다. 재판 상대방과의 대화에서는 원래부터가 입장이 반대이니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신의 입장만을 반복한다. 법정을 오가다가 마주치는 낯선 사람, 무언가를 묻고 싶어 두리번거리는 듯해도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라면 굳이 가던 길을 멈추지는 않는다 등등. 이런저런 지난 행적들을 돌이켜 보니 나는 그리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친절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친절(親切), 사전적으로는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親이라는 것이 가깝고 정겨운 느낌을 주는 것이고, 切이라는 것이 고분고분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친절이란 정서적으로 상대방과 공감하고 정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경우 나의 생각이나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꺾고(切) 상대방을 향해 머리를 돌리거나 허리를 굽혀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친절의 근본, 친절의 ‘씨’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방과의 공감’이 아닐까요. 어느 정신과 의사의 글에서 본 것인데,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기에 적어둔 표현이 있습니다.

‘공감은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 ‘공감은 내가 저 사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평가받지 않는다는 안전한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그 어떤 사전적 의미보다도 공감이 무엇인지 잘 느끼게 해 주는 글이었습니다. 순수하게 또는 순진하게 평가하지 않고 의뢰인의 주장과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변호사가 결코 유능한 변호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변호사는 의뢰인을 대신하여 싸우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기에 의뢰인의 상황과 감정에 대한 공감에서 모든 일을 시작해야 하겠지요. 공감을 잘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보는 것, 상대방을 평가하지 않고,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잘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 ‘너나 잘 하세요’와 같은 태도에서 친절을 기대하기란 어렵겠지요. ‘친절한 금자씨’의 영어제목이 ‘sympathy for lady vengeance’인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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