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부산출신이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대학입학 전까지 부산에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부모님은 양친 모두 경남 남해군이 고향이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라셨다.

양가의 족보에 따르면 친가와 외가의 선조들은 14세기 여말선초부터 남해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각각 안동과 성주다.

그러니까 필자는 고래 적부터 영남사람으로 호남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굳이 찾으려면 군 입대를 광주에 주둔한 31사단 신병교육대로 했다는 것과 대학시절 2년간 머문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 고향이 광주였다는 정도다.

아내도 부산사람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다녔다. 장인은 함경도 원산 출신으로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1·4후퇴 때 월남한 이후 계속 부산에서 살았다. 강원도 철원 출신인 장모는 다섯살 무렵인 6·25전쟁 때 피난 내려와 계속 부산에서 살았다.

누가 묻지도 않은 인적사항을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이제부터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어떤 주제’ 때문이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현직교원만 교원노조원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제2조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가운데 8명이 합헌의견을 냈고 김이수 재판관 한명만이 위헌의견을 냈다. 김이수 재판관은 지난해 연말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 심판에서도 유일하게 기각(해산반대)의견을 냈다.

이 밖에도 김이수 재판관은 몇몇 민감한 사건에서 ‘나홀로 반대’인 소수의견을 낸 바 있다.

김 재판관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위대한 반대자’ ‘헌재의 체면을 살린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역자’라는 격한 반응도 있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개인의 자유다. 김 재판관이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듯 그에 대한 평가도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것이다. 그 점을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도가 심하다 싶은 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 문제다. ‘빨갱이’는 애교에 속할 정도다.

과거 변정수 재판관이나 조승형 재판관 등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이름을 높였던 헌법재판관들도 이 정도로 비난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김 헌법재판관이 호남출신이라는 점을 트집잡으며 섬뜩한 욕설을 해대는 고약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특정지역을 거들먹거리며 ‘종북세력의 근거지’라고 생떼를 아무렇지 않게 쓰기도 한다.

‘홍어’와 같이 극단적인 비하와 증오, 편견과 배척이 담긴 표현도 심심찮게 보인다. 사제폭탄을 보내야 한다며 공격성을 드러낸 게시글이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의 지역감정이 불합리한 관행이나 선입견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서구사회에서 엄히 처벌하고 있는 ‘혐오범죄(hate crime)’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일부에서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없애는 대신 종교, 국적, 성별, 지역, 인종, 성적 지향, 계층이나 특정 정치세력 등 사회적 소수를 극단적으로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혐오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수준은 그 사회의 소수세력이 어느 정도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헌법재판관의 소수의견마저 극단적인 증오와 배척, 공격의 대상이 된다면 사회의 자정능력에만 기대를 걸 상황은 아닌 듯 싶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