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의 소속변호사로 일하다가 개인 사업자가 된 지 3년여가 지났다. 사무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과정에서 지출은 필연적으로 늘어났다. 여태까지는 날로 늘어만 가는 카드 대금 청구서에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한달 간의 카드 명세서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5만원, 10만원 등의 지출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와중에 ‘이 돈은 아깝지 않게 잘 썼다’라는 소비가 의외로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몹시 놀랐다.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물건을 구입하는데 참으로 많은 돈이 쓰이고 있었지만, 사이사이 어쩔 수 없는 지출도 많고, 어떤 경우는 돈을 쓰고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지출이 꽤 많았던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변호사회는 비교적 좁은 지역법조이다. 10년 전쯤 변호사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법원, 검찰청을 비롯해서 관내에 있는 모든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해서 개업 인사를 했다. 법관, 검사와 달리 변호사들은 거의 대부분 사무실에 없었다. 다이나믹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어딘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30%도 채 되지 않은 지역 법조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분에게는 수인사와 가벼운 덕담으로 인사를 마치고 나왔고, 어떤 분들은 선 채로 눈만 마주치고 나와야 했다. 그 생경한 경험 속에서 굳이 차를 대접하던 원로 변호사 몇분들도 계셨는데, 그러면서 입을 모아 했던 말은 ‘알뜰하게 재테크를 잘 하라’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변호사는 필요한 이상으로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재테크가 필요가 없었지만, 그런 이유로 재테크를 소홀히 한 점은 후회가 많이 된다고 말씀들을 하셨다. 당시에도 그 충고는 지당한 이야기였으므로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 말씀은 마음 속 깊이 와 닿고 있다. 살림이 불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소비가 느슨해져만 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 나의 직업이 변호사라고 이야기하면, “요즈음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날로 어려워가는 변호사 업계의 불황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리라.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에게 “그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느냐?”라고 물어본 일이 있는데, 뾰족한 정답을 말하는 변호사들은 없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변호사들의 불황을 진심으로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기도 하고, 질문을 하는 취지가 때에 따라 달라서 그런 모양이다. 어떨 때에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데, 당신은 어떻소?”라는 다소 도발적인 뉘앙스로 들리기도 하므로, 그때는 “아직은 끄떡 없다”고 답을 한다.

만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화제가 궁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저런 질문을 한다면, “많이 어렵지만 잘 버티고 있습니다”라고 솔직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변호사들에게 “일거리가 많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면서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변호사들이 많은 돈을 벌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많은 돈을 여유롭게 쓴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상 ‘변호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일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참’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많은 수의 변호사 공급으로 경쟁이 몹시 치열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지식, 정보의 독점으로 손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시대는 갔다.

‘면기난부(免飢難富)’라고 했던가? 필자는 연수원 시절 한승헌 변호사의 특강에서 이 말을 처음 들었다. 굶는 것은 피할 수 있으되, 큰 부를 축적하기는 어렵다고 법조의 원로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래도 아직은 먹고살 만하니 너무 겁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업의 체감도는 자칫하면 난기불가부(難飢不可富)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시절이 이렇게 변하였으니, 변호사로서 재물을 보는 시각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남의 고민거리를 짊어지고 살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렵사리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라면, 알뜰하게 자신의 생존을 위한 바탕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빼놓지 말고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바로 가장 고생하는 변호사 자신을 위해서도 한정된 재물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필자에게 한정된 경험일 수도 있으나, 카드 명세서를 보고 오로지 스스로를 위한 지출이 몹시 적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유한한 존재이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남들만큼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 가끔은 선물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는 자기 몸이 유일한 자산인데, 그 몸뚱아리도 감가상각(減價償却)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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