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법조 > 일본
[영리더 프로그램 참가기]시모노세키(下關)와 동아시아 평화
황보현 변호사  |  hbhyun96@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545호] 승인 2015.06.01  09:52:2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시모노세키 조약

제가 있는 후쿠오카에서 자동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규슈와 혼슈를 연결하는 간몬교를 만나게 되고, 그곳을 지나면 혼슈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시모노세키라는 항구 도시에 다다르게 됩니다. 지난 4월 친구들과 시모노세키를 여행하였는데, 이곳은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 승리 후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이 마주앉아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 말 한반도는 주변 열강들의 세력 다툼으로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1894년, 조선의 갑오동학운동을 계기로 청나라와 일본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1842년 아편전쟁 패배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동아시아 패권국의 지위를 잃어간 반면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19세기 말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에서 밀려났던 혼슈 서쪽 끝에 위치한 조슈번(현 야마구치)과 규슈 남쪽의 사쓰마번(현 가고시마)을 중심으로 부국강병의 기치를 든 다양한 개혁정치가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청나라를 군사적으로 몰아붙였고, 결국 일본은 전쟁 승리를 통해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1조는 ‘청나라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한다’ 입니다. 즉, 일본이 청일 전쟁을 일으킨 최종 목적이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간섭을 막고 조선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점이었습니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동아시아의 질서가 중국 중심에서 일본 중심으로 옮겨졌고, 그 후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마저 승리하면서 결국 한반도의 운명은 일본의 지배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19세기 한반도의 명운을 끼친 중요한 조약으로 많은 학자들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뽑고 있습니다. 전쟁 당사자가 아닌 한국에 대해 중국과 일본이 서로 전쟁을 통해 한국의 지배를 노렸다는 점에서 약소국의 비애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모노세키 여행은 저에게 역사의 아픈 단면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

이번 학기에는 다양한 법학 과목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라는 수업도 듣고 있습니다. 규슈대학교에 계신 한국인 교수님이 지도하시고, 중국, 한국, 스페인, 아프가니스탄, 태국 친구들과 함께 토론식 수업을 하고 있는데, 비록 수강생 중 일본 친구는 없지만 일본에서 외국인들과 동아시아를 논한다는 점에서 흥미있는 수업같습니다.

참고로 일본 대학은 대부분 법학부에 법학과와 정치학과가 함께 있어서 정치학 수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수업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잠시 법학 공부를 떠나 다양한 시각으로 동아시아를 공부할 수 있어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동아시아의 주변 정세를 보면,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며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새삼 느낍니다. 특히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는 단순한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이고, 최근 중국 주도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대한 미국의 견제, 아베정권의 우경화나 미일 동맹 강화 등은 19세기말 한반도 정세처럼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의 다툼으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물론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 간에 여전히 경제적인 상호 협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경제 협력과 경제 부흥도 지속적인 정치적 안정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 정권의 통렬한 역사적 반성과 중국의 주변국가에 대한 관용 정책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런 점에서 5월 6일 일본 3대 신문인 ‘아사히 신문’이 대대적으로 게재한 미국 일본학 전공자 187인의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비판 성명’은, 일본 언론 중에서도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을 정면으로 다루는 언론이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또한 5월 20일 ‘재패니즈 타임즈’ 기획기사에는 1945년 가미카제 명령을 수행 중 비행기 불시착으로 목숨을 부지했던 일본 병사가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라는 내용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그분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서도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분들의 염원처럼 하루 속히 일본이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를 통해 동아시아를 상호 협력하고 서로 존중하는 평화공동체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특별기고]변호사들에게 있어 국회의 의미
2
[기자의 시선]김광석과 나쁜 여자, 그리고 무죄추정의 원칙
3
[사내변호사 길라잡이]기업회계와 준법통제
4
[로스쿨 통신]사실상 9개월의 실무수습
5
[회원동정]강지원·류관석 변호사, 군 적폐청산위원회 위원
Copyright © 2017 대한변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