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 신문사의 대학생 인턴기자로 일하던 때였습니다. 한번은 서울 소재 한 사회복지회관에서 장기간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현장에 취재하러 갔습니다. 관장의 임기 연장 문제를 두고 이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대립이 격해졌고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져 사무실 한쪽 벽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양쪽 얘기를 들으며 열심히 취재했습니다. 무너진 사무실 벽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고 이튿날 관련 기사와 함께 보도했습니다. 사진까지 곁들이니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오래전 얘기를 굳이 꺼낸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기사가 나가고 두달여 뒤의 일입니다. 다니던 학교신문에 제가 찍은 사진이 실렸습니다. 복지 관련 기획기사에 들어간 사진이었는데 사진설명이 잘못됐더군요. 정부가 복지예산을 편성하는데 지나치게 인색해 사회복지회관의 벽이 무너져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사진의 출처로는 유명 포털사이트의 명칭이 적혀 있었습니다.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검색해서 나온 사진일테니 모르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진설명이 잘못된 것만큼은 어떻게든 정정을 해야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면 담당자라는 학보사 A부장의 말은 냉랭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정정기사를 쓰면 우리 신문의 공신력이 떨어지게 되니 곤란합니다.”

참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사과를 하면 공신력이 떨어진다니요. 오히려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는게 공신력을 높이는 길 아닌가 생각됐지만 더 이상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왠지 못 믿을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심리말이죠.

사과에 인색하다보니 일이 커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미안하다 한 마디면 해결될 일을 더 키워 자존심을 내세우며 싸우다 경찰서나 검찰청을 전전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남 일처럼 얘기하지만 저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내가 틀렸다면 힘들더라도 사과하는게 그렇지 않은 것 보다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교훈은 얻었습니다. 물론 실천에 옮길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요.

이 같은 사정은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가 봅니다. 정확한 판단과 판단에 대한 신뢰를 가장 중요시해야 할 법원과 검찰도 사과에 인색하기는 마찬가지라서입니다.

최근 대법원은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씨에게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1991년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간부였던 김기설씨의 투신 자살과 관련해 검찰은 강씨가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가 있다며 구속기소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징역 3년형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검찰기소의 핵심근거였던 문서필적 감정 결과가 허위로 드러나면서 재심을 청구했고 24년만의 무죄확정 판결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법원에서도 검찰에서도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수사와 판결을 담당했던 이들도 침묵했습니다. 재심사건 원심에서부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지켜 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한 법원의 선고과정과 굳이 재심사건을 상고까지 해가며 대법원까지 끌고 간 검찰의 모습이 참 답답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 놓고 피해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점도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사법부의 모습에서 과거 A부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면 무리일까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원은 신뢰받는 기관이어야 합니다. 기소독점권을 지닌 검찰도 물론이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무결점 기관이 되라고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실수도 하고 잘못도 있겠죠. 다만 잘못을 저질렀다면 솔직하게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걸 기대하는 겁니다.

물론 잘못된 판결을 인정하고 무죄선고한 것만 해도 법원으로서는 엄청난 용기였을지 모릅니다. 법원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검찰 측 입장표명도 나름의 성의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곤란합니다. 재심판결을 확정했으니 정의는 승리했고 우리 모두는 박수를 치고 과거를 잊어야 하는 걸까요. 24년간 친구를 자살로 몰고 간 전과의 멍에를 지고 산 강기훈씨의 인생은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법원과 검찰이 제발 답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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