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정부 때인 2005, 2007년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은 것을 두고 떠들썩하다.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정치권에 금품을 줬다면서 남긴 일명 ‘성완종 리스트’ 못지 않게 그의 사면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연일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정부에서 여러번 사면되는 일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사례를 찾자면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 1997년 연거푸 특사 대상에 이름을 올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정도가 있었지 싶다.

특사는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통치행위다. 그 효력은 매우 막강하다. 특사 대상이 된 범죄자는 법원에서 확정받은 형을 더 이상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대개의 경우 형 선고 자체가 무효가 된다. 대통령이 삼권분립 원칙을 초월해 세칭 ‘빨간 줄’을 영원히 지워주는 것이니 엄청난 특혜다. 성 전 회장 특사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한 사람이 사면받을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이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죄를 한번이라도 없애주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문제는 성 전 회장이 어떻게 권력자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 됐느냐다. 성 전 회장이 사면받기 위해 이전 정권의 실력자와 모종의 ‘뒷거래’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이 논란의 발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 전 회장은 전형적인 ‘개룡남(개천에서 용이 된 남자)’이었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궂은 일을 전전해오다 자수성가로 대기업 회장이 된 인물이다. ‘학벌도, 빽도 없는’ 성 전 회장이 두 차례나 사면받은 것은 부정한 로비의 결과라는 의혹이다. 사면 절차에 불법이 개입됐다니…. 사실이라면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런데 기자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불법행위가 개입하지 않은 다른 특사는 정당할까? 특사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것이 성 전 회장 사례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의문이다. 특사 대상에는 주로 정치자금·선거 범죄를 저지른 유력 정치인, 횡령·배임·사기 혐의로 처벌받은 재벌 총수가 다수 포함돼 왔다. 정·재계에서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면될 때마다 측근 봐주기, 정치 야합이라거나 사면 비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등 의혹의 눈길이 쏟아졌다. ‘국민화합’ 또는 ‘경제살리기’ 등이 단골로 언급되는 특사의 명분이었다. 물론 국민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당초 사면법은 왜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 사면법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봤다. 사면법은 1948년 제헌국회가 만들었다. 헌법에 대통령의 사면권한이 명기됐고, 헌법 제정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정부조직법에 이은 ‘2호 법률’이다.

제헌국회가 천명한 사면법 제정 취지는 이랬다. “조국이 광복되고 정부가 수립된 상황에서 현재 수감돼 있는 2만여명의 수인을 사면해 광복의 기쁨을 같이하고 이들에게 재생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한다.”

첫 사면은 일제에 저항하다가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이들을 풀어주려는 것이었으며, ‘공공복리’, ‘자유민주주의’ 같은 새 헌법 가치에 맞춰 새 국민을 교화하려는 것이었다. 지금껏 대통령들이 이런 원칙에 근거해 사면권을 행사했느냐가 결국 특사 제도를 둘러싼 논란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인다. 사면받은 정치인이 언제 죄를 지었느냐는 듯 다시 선거에 나오고, 비리 기업인이 안면 몰수하고 사회 지도층으로 예우받는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기자의 가까운 지인 중에 사면을 받은 사람이 몇몇 있다. 대부분 1980∼1990년대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형사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소위 ‘반골(反骨)’ 선배들이다. 굴곡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부득이하게 범죄자가 됐던 이들은 사면을 받은 뒤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여러 분야에서 각자 몫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밝히고 있다.

사법절차가 아무리 잘 갖춰졌다고 해도 인간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다. 혹시 모를 사법 피해를 대통령이 사후 구제해주는 절차로서 사면은 가치 있는 제도다. 다만 헌법이 허용한 사면 권한이 재판 결과와 국민 법감정마저도 무시한 ‘면죄부’까지 용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대통령과 보좌진은 염두에 둬야 한다.

석연치 않은 성 전 회장의 특사 과정은 제도 개선 논의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여러 차례에 걸쳐 특사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지시한 바 있어, 특사 제도가 어떤 식으로든 나은 방향으로 바뀌긴 할 모양새다.

적어도 불법이 개입할 수 없게끔 절차가 투명해지는 기반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특별사면이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사면’이란 따가운 시선을 조금이나마 비켜갈 수 있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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