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7일 H는 어학병으로 연무대 육군훈련소에 입대하였다. 어학병시험 합격자 발표와 동시에 입영날짜가 통지된 지 꼭 한달만이었다. 그 통지를 받고 나서 H는 한달을 한껏 편하게 쉬다 갈 심산이었다. 앞으로 훈련소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군복무도 미리 준비가 필요한 일로 생각되었다. 생활리듬을 군대의 일과에 맞추는 연습도 하고 체력도 길러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H는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이 느긋하고 태평스러웠다. 입영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조급해진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점차 도를 넘기 시작하였다. 나는 변론을 맡았던 사건이야기들로 H의 긴장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려 했던 것이다.

군복무 중에는 사소한 것이라 여겼던 부상이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은 탓에 전역 후 후유증으로 남았고 끝내 법원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사례들부터 끄집어냈다.

‘너, 군대 가서 억지로 일어나 훈련받으려면 몸이 금방 따라주니? 허둥지둥 하다 혹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챙겨주는지 아니? 군대는 집단으로만 존재하지 개인은 신경 안 써.’ 이게 내가 전달하고픈 메시지였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나는 더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최전방으로 작전 나간 날 대열의 후미에서 자신에게 총구를 돌려 생을 마감한 어느 군인에 관해 변론했던 경험담까지 동원하였다.

그때만 해도 자유의지의 개입이란 이유로 순직인정 받기가 바늘구멍 같던 시절이었다. 사실심 법원은 대법원 판례가 분명한데 무슨 이야기 하느냐는 식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곤 하였다. 비극적인 파국을 불러 온 부대 내의 극단적인 상황을 공들여 써낸 준비서면에 재판장은 슬쩍 웃으며, “안 되는 것 아시죠?” 했었다.

그런 쓰디쓴 기억도 H를 훈계하려는 일념에서 나는 기꺼이 상기하였었다. 아무튼 나는 H에게 군대란 이런 곳이니 미리 몸과 마음을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H의 반응은 없고 도리어 나 자신의 불안감만 증폭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덤으로 나는 전부 패소한 변호사의 이미지까지 H에게 남겼다.

내가 다룬 사건들을 통해 본 것이 엄연히 군대의 현실이긴 하지만 그게 군대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경험의 한계에 갇혀 내가 본 것이 전부인 양 H를 겁박하려 들었다.

아닌 척하지만 역시 불안했을 H에게는 격려와 성원이 더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늘 사건의 부정적인 면부터 먼저 보는 내 직업병적 사고 때문에 나는 엄마로서도 H에게 무능하였다.

입영일, H와 나는 예정시각보다 훨씬 일찍 연무대 육군훈련소 앞에 도착했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는 동안, H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이 갈수록 H는 말수가 적어졌다. 입영장병과 가족들이 앉은 건너편 테이블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들 군대 보내 본 엄마 아니면 말할 자격이 없어, 군대를 보내 봐야 아는 거야.” 대화의 맥락은 모르겠으나 순간 나도 솔깃하였다. ‘그래 맞아, 지금 이 순간의 심정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어.’ 나도 모르게 경험의 오만과 편협함에 다시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경험만이 가치 있고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면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나와 달리 취급하고 내가 우대받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쉽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공무원과 교사 임용고사에서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위헌이라 결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당시 결정에 억울해하던 그때 그 사람들도 건너편 테이블의 목소리와 출발이 같지 않았을까.

오후 1시경 카페를 나와 훈련소 방향으로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훈련소 정문 앞에 이르자 H가 휴대전화를 내게 건넸다. 이제 H는 원할 때 마음대로 연락도 할 수 없겠구나…, 가슴이 먹먹했다.

연병장 스탠드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자 곧 입영장병들을 연병장으로 불러내는 방송이 들렸다. 사람들은 서둘러 한번 더 포옹을 하고 등을 두드리고 어루만졌다. 우르르 입영장병들이 연병장으로 몰려나가자 지키고 섰던 군인이 스탠드와 연병장 사이에 경계라인을 둘러쳤다. 그 라인은 스탠드에 앉은 가족들에게 이제 댁의 자녀는 대한민국 육군이 훈육하겠다 말하는 듯 보였다.

징병제 하에서 군복무는 광야를 통과하듯이 절제와 극기, 책임과 배려의 자세를 훈련하는 기간이기도 하리라.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단련되어 정금같이 나아오기를 기대하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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