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에게는 참 많은 메일이 온다. 그 가운데에는 ‘억울하게 재판에 졌다’는 민원이 담긴 메일도 많다. 정기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떻게 구했는지 법조출입 기자명단 순서에 따라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주로 자신의 사건을 맡은 주심판사나 재판장의 과거 전력을 들어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긴 하지만 이들이 ‘공정하지 못한 판사’로 꼽는 법관 가운데에는 대법관도 포함돼 있다.

어떻게 찾았는지 아주 오래 된 사건기록이나 언론보도를 찾아내 문제를 제기하곤 한다. 별도의 통계를 낸 것은 아니지만 ‘공정하지 못한 대법관’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사람은 아마도 신영철 전 대법관이 아닐까 싶다. 거의 매달 새로운 민원인이 등장해 신 전 대법관을 성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때에는 하루걸러 하루 꼴로 비난 메일이 도착한 적도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을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 밑도 끝도 없이 ‘재판이 잘못됐다’면서 억울함을 늘어놓지만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한 줄도 찾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무작정 ‘신영철 같은 불공정한 대법관이 재판을 맡아서 졌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 전 대법관이 촛불시위와 관련한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그 때문에 대법관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징계까지 받긴 했지만 그것 만으로 그의 재판을 모두 불공정하다고 매도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신 전 대법관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불신을 산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필자가 만난 어떤 취재원은 자신의 사건이 신 전 대법관에게 배당됐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한 사례도 있다.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공정하지 못할 것 같다’며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신 전 대법관이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을 했다고 해도 당사자들의 승복을 이끌어 내기 어려운 구조였던 셈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최근 수년간 공식석상에서 “법관은 평소 언행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것도 어쩜 그와 같은 문제를 고민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신 전 대법관은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졌을 때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신 전 대법관에게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가 퇴임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법조기자단 안팎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드디어 나가는구나”며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지난 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박상옥 대법관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에 임명동의안이 접수된지 100여일 만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노동당 등 박 대법관 후보자가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주임검사로 고문사실을 은폐하는데 가담했거나 은폐를 방조한 의혹이 있다며 격렬한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여러차례 부적격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야당들은 박 대법관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법조계의 여론도 박 후보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한변협이 반대의사를 밝힌 것은 물론이고, 실명으로 박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한 현직 법관들도 여럿 있었다. 시민사회의 반발은 말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진 정도다. 이렇게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서 대통령과 여당이 박상옥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박 대법관이 앞으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과 함께 숱한 반발이 우려된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앞으로 박 후보자가 사건을 맡을 때마다 공정성 논란이 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논란은 박 후보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법원의 독립과 공정성을 본질적으로 위협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저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몇몇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이미 그런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6년동안 필자를 비롯한 여러 언론인들 앞으로 사건 관계인들의 항의성 메일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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