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보수를 정함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시간당 보수를 정해 놓고 그 사건에 변호사가 투입한 시간 총량을 곱해서 산출해 내는 방식일 것이다. 변호사마다 시간당 보수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비싼 변호사는 정답을 제공하고 싼 변호사는 엉터리 답을 주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비싼 의사는 제대로 치료를 하고 싼 의사는 엉터리로 치료를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풍부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는 법률 판단이나 문서 작성에 쓰는 시간이 적을 것이고 경력이 일천한 변호사는 간단한 의견서 하나 작성하는데도 시간 소모가 많을 것이다. 시간당 보수가 다른 이유다. 하지만 유능한 변호사는 다양한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고 그렇지 않은 변호사는 제한된 시야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탈리아의 어떤 귀족이 미켈란젤로에게 자기 집 거실에 놓을 조각상을 의뢰하였다. 미켈란젤로는 금방 조각상을 완성하였다. 귀족은 거액의 작품대금이 아까워졌다. “불과 일주일의 작업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소?”라는 귀족의 불평에 미켈란젤로는 답했다. “일주일 안에 이런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기 위하여 저는 20년의 세월을 바쳤습니다.”

그렇지만 송무사건에서는 시간당 요율의 방식으로 변호사 보수를 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실제로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재판이 길어질 경우, 그 투입시간의 양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송무사건의 경우에 착수금, 성공보수금의 구조로 변호사 보수가 정해진다. 이른바 일괄지급 방식이다.

몇년 전 소비자단체 모임에 초청되어 패널로 간 적이 있다. 어떤 분이 기조연설을 하였는데 악덕 변호사를 예로 들었다. 재판이 딱 한번만 열리고 종결되었음에도 그 변호사는 착수금을 전혀 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분에게, 만일 그 사건 재판이 오래 가게 될 때는 약정된 착수금 외에 추가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인지 반문하였다.
원래 일괄지급 방식은 재판이 생각보다 길게 갈 경우에 변호사의 리스크가 되는 것이고 생각보다 쉽게 끝날 때는 의뢰인의 손해가 되는 것이다.

사무실 임대차 중개를 하는 내 친구는 요즘 변호사에게 사무실 임대해 주는 것을 꺼리는 건물주가 늘고 있다고 했다.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많아서 기피업종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이 매일 절간처럼 고요하다. 수임사건은 몇개 되지도 않는다. 더구나 그 사건 대부분이 수임한지 1년이 넘었고, 어떤 사건은 거의 2년도 다 되어 간다. 그러니, 시간당 보수 산식을 적용하면 수익성은 더욱 떨어진다. 어떤 재판은 첫 기일이 지정되는데 무려 6개월 이상 걸린 것도 있다. 법원의 인사이동 시기에 걸리면 예사로 3~4개월간은 허송세월하게 된다.

재판이 오래 가게 되는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일부 변호사들의 악습 때문이다. 재판 기일에 임박해서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일이 허다하다. 법정에 일찍 도착하여 다른 사건들을 방청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재판장은 충분히 시간을 줬는데도 왜 이렇게 재판 당일에야 준비서면을 제출하느냐고 화를 꾹꾹 누르면서 변호사를 질책하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실조회 신청을 하겠다면서 사실조회 회신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하여 재판기일을 넉넉하게 잡아 달라고 한다. 재판장은 두달쯤 후로 재판 기일을 지정한다. 그 다음 재판기일 때까지도 사실조회 신청을 하지 않아서 재판부는 기일을 두달 후로 연기하였다. 그 두달이 다 흘러갈 무렵에 사실조회 신청을 하였고 이번에는 사실조회 회신이 오지 않았다고 하여 다시 재판기일이 연기되었다. 이렇게 5개월의 시간이 그냥 지나갔다. 의뢰인은 모든 예금계좌가 가압류되어 있어서 생활비도 인출하지 못하는 등 피가 마르고 있다. 내가 겪은 실제상황이다.

민사소송법 제149조에서는 실기한 공격방법은 각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조문이 실제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재판이 오래 가면 변호사의 시간당 보수는 계속 줄어든다.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의뢰인이다. 재판이 계속되는 내내 의뢰인의 가슴 속에는 납덩이가 들어 앉아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이 스스로 악습을 고치지 않는다면 법원에서라도 민사소송법 제149조를 과감하게 적용하여야 한다.

대한변호사협회든, 내가 속해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든 새로 임원진이 취임하면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벌인다. 주로 대외 투쟁이다. 재판기일 직전에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악습을 고치는 등의 내부 반성도 변호사협회의 개혁 어젠다에 들어 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