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3다95964 판결

Ⅰ. 사실관계
판례평석과 관련하여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를 간단히 압축·변형하였다(실제 사안은 상당히 복잡하다).
원고는 서울 강남구 소재 오피스텔 263세대의 관리를 위하여 구분소유자들에 의해 구성된 관리단이고, 피고는 2005. 8. 11. 원고의 회장 겸 이사로 선임된 자인데, 2007. 8. 10. 2년의 임기가 종료하였음에도 관리단집회를 소집하지 않고 계속하여 직무를 수행하였고, 2008. 5. 26. 일부 구분소유자들에 의해 개최된 임시총회에서 해임되었다. ① 피고가 원고의 회장직에서 해임되어 원고의 대표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음에도 그 뒤, 2008. 8.경부터 2008. 10.경까지 사이에 원고의 예금을 권한 없이 임의로 인출하였음을 이유로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로서 3억8000만원의 지급을 구하였다. ② 피고는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위 자금을 인출하였으므로 적법하다는 등의 주장을 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만, 원고가 지출하여야 할 관리비 등을(피고가 해임된 상태에서 적법한 사무관리로 보아) 피고가 원고를 위하여 지출한 것으로 해당 금원 및 나아가 피고가 원고에게 대여금 명목으로 지급한 금원의 공제 주장은 인정되었다. ③ 이에 대하여 원고는, 2008. 8.경 이전에 피고가 이미 원고 명의 통장에서 피고 명의 통장으로 이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임의로 5억3000만원을 가져갔으므로 위 금액 상당의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을 위 ②에서 피고가 주장한 금원과 대등액에서 상계하면 위 ② 공제할 금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대상판결의 원심은 원고의 위 ③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배척하였다.

Ⅱ. 쟁점
쟁점은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위 ② 부분)에 대하여 원고가 다시 피고의 자동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위 ③ 부분)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이다.

Ⅲ. 법원의 판단
소송상 방어방법으로서의 상계항변은 통상 수동채권의 존재가 확정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행하여지는 일종의 예비적 항변으로서 소송상 상계의 의사표시에 의해 확정적으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소송에서 수동채권의 존재 등 상계에 관한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비로소 실체법상 상계의 효과가 발생한다(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1다3329 판결 참조).

이러한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에 대하여 원고가 다시 피고의 자동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하는 경우, 법원이 원고의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과 무관한 사유로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을 배척하는 경우에는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판단할 필요가 없고,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이 이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원고의 청구채권인 수동채권과 피고의 자동채권이 상계적상 당시에 대등액에서 소멸한 것으로 보게 될 것이므로 원고가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으로서 상계할 대상인 피고의 자동채권이 그 범위에서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이 되어 이때에도 역시 원고의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에 관하여 판단할 필요가 없게 된다. 또한, 원고가 소송물인 청구채권 외에 피고에 대하여 다른 채권을 가지고 있다면 소의 추가적 변경에 의하여 그 채권을 당해 소송에서 청구하거나 별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고의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은 일반적으로 이를 허용할 이익이 없다. 따라서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에 대하여 원고가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위 법리에 의하면, 원고의 위와 같은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은 주장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원심이 원고가 주장한 채권의 존부에 대하여 나아가 판단한 것은 잘못이나, 원고의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배척한 결과에 있어서는 정당하다.

Ⅳ. 검토
1. 대상판결의 의의
종래 소송상 상계에 관하여는 주로 피고의 방어방법인 상계의 항변이 논의되었지만, 사안은 피고의 상계항변이 아니라, 원고가 상대방인 피고의 공제 주장에 대하여 상계로 재반박한 사안이다. 지금까지 선례가 없었던 소송상 상계항변에 대하여 상대방이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를 다룬 첫 판결이다. 위 쟁점에 대하여, 대상판결에서 상계의 재항변은 이를 제출하여도 소송상 부적법하여 상계의 재항변 자체가 고려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상판결은 소송상 방어방법으로서의 상계항변을 일종의 예비적 항변으로서 당해 소송에서 수동채권의 존재 등 상계에 관한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비로소 실체법상 상계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전제한 뒤, 피고의 소송상 상계항변을 배척하는 경우(상계의 재항변을 판단할 필요가 없음)나 상계항변이 이유 있는 경우(상계할 대상인 피고의 자동채권이 그 범위에서 존재하지 않음) 모두 상계의 재항변에 관하여 판단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점 및 원고가 다른 채권을 가지고 있다면 소의 추가적 변경이나 별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상계의 재항변은 일반적으로 이를 허용할 이익이 없다는 점을 논거로 들고 있다. 소송정책적 판단을 중시하여 상계의 재항변을 심리의 대상에서 배척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 일본에서의 논의
독일과 일본에서도 판례와 통설은 위 쟁점에 관하여 소극적으로 보고 있다. 독일에서는 오랫동안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논의를 그대로 우리 법에서 재현하는 것은 양국 법, 특히 실체법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있어 그 소개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는 일본에서의 논의만을 소개하기로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 1998년 4월 30일 판결에서는 위 대상판결과 마찬가지로 상계의 재항변을 부적법한 것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소송 밖에서 상계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상계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한, 이에 의해 확정적으로 상계의 효과가 발생하므로 이를 재항변으로 주장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소송상 상계의 의사표시는 상계의 의사표시가 이루어지는 것에 의해 확정적으로 그 효과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해당 소송에서 법원에 의해 상계의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실체법상의 상계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므로 상계의 항변에 대하여 다시 상계의 재항변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한다면, 가정적인 것에 다시 가정적 상황이 겹쳐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쓸데없이 심리를 복잡하게 하여 타당하지 않고, ② 원고가 소송물인 채권 이외의 채권을 피고에 대하여 가지고 있다면, 소의 추가적 변경에 의하여 위 채권을 해당 소송에서 청구하든지, 또는 별소를 제기하는 것에 의해 위 채권을 행사할 수 있고, 가령 위 채권에 대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라도 소송 밖에서 위 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상계의 의사표시를 한 뒤, 이를 소송에서 주장할 수 있으므로 위 채권에 의한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불합리하지 않고, ③ 또 민사소송법 제114조 제2항(우리 민사소송법 제216조 제2항에 해당) 규정은 판결의 이유 중의 판단에 기판력이 생긴다는 유일한 예외를 정한 것에 비추어 동 조항의 적용범위를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풀이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학설의 동향도 위 최고재판소 판례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대상판결의 이론적 분석
대상판결은 위 쟁점에 관한 결론을 소송상 상계에 관한 법적 성질 내지는 이론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이끌어내지 않고, 오히려 소송정책적 내지는 소송절차적 이유를 강조하여 판단을 내린 느낌인데, 이론적 분석을 하고자 한다.

(1) 소송상 상계의 법적 성질
소송상 상계를 사법행위로 보는 입장에 따른다면, 변론에서 상계의 항변이 주장되어 상계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되었다고 보는 시점에서 상계의 실체적 효과가 확정적으로 생기게 되고, 그렇다면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은 그 자체로써 부적법한 것이 된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예비적 상계의 항변에서 즉시 피고의 반대채권의 소멸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으므로, 만약 사법행위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대상판결에서는(분명하게 판시하고 있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사법행위설을 따르면서 조건부 상계설 내지는 신병존설을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입장에서는 오히려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도 허용된다고 볼 것이다. 판시와 같이 수동채권의 존재 등 상계에 관한 법원의 실질적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비로소 실체법상 상계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본다면, 나아가 피고의 반대채권을 수동채권으로 하는 원고의 상계의 재항변의 여지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2) 상계의 재항변을 허용할 이익 여부
대상판결에서 상계의 재항변이 허용되지 않고, 소의 추가적 변경이나 별소 제기를 할 수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상계의 재항변을 허용할 이익이 없다는 근거를 들고 있는데, 과연 상계의 재항변을 허용할 이익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나아가 이는 원고의 방어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계는 방어방법이고, 공격방법은 아니므로 상계를 청구의 변경의 요건이나 별소를 대신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사자가 소송에서 항변, 재항변과 여러 주장을 계속 펼치면서 사건이 복잡화되는 것은 당연한데, 복잡화하는 것이 원고의 방어권을 부정할 근거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고에게 상계의 항변이 허용되는 것에 대응하여 무기평등의 관점에서 원고에게도 상계의 재항변을 인정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아니다. 물론 상계의 항변이 남용적으로 주장된 경우에 절차를 혼란시키거나 지연시킬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는데, 민사소송법은 이러한 부적절한 공격방어방법에 대처하는 방책으로, 실기한 공격방어방법의 각하 규정(제149조)을 두고 있고, 경우에 따라 신의성실의 원칙(제1조)도 작동할 수 있다.

4. 대상판결의 정당성
피고가 먼저 상계의 항변에 의해 심판의 대상을 확대시킨 것이고, 원고는 다시 피고의 방어방법에 대한 자기의 방어로 상계권의 행사에 의해 재항변에 이른 경우라면 원고의 상계의 재항변을 비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보통 상계의 항변은 상대방이 소구하는 채권과 간이·신속하면서 확실한 결제를 도모하는 기능을 가지는데, 원고의 상계의 재항변의 경우라도 상계의 항변의 위와 같은 기능은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어떠한 근거를 내세워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판단이 쉽지 않지만, 직관적으로 보면, 소송상 상계의 재항변을 허용하지 않는 대상판결은 그다지 수긍되지 않는다. 다만, 이론에 따른 연역적 결론의 도출을 떠나, 실무적으로 소송운영의 관점에서 대상판결의 정당성을 찾을 수는 있다. 대상판결은 특히 상계의 재항변을 인정하지 않아도 원고에게 실질적 불합리가 없는 경우에는 신속하고 공정한 심리절차를 지향하는 관점에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않다고 보이는 상계의 재항변에 대하여 심리의 대상으로부터 배척할 수 있는 여지를 인정한 것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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