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다시 한번 그가 주창한 ‘아시아적 가치’라는 말이 언론에 조명을 받았다. ‘아시아적 가치’는 한 마디로 서구와는 역사적 발전 형태나 가치관이 다른 아시아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굳건한 신념으로 리콴유는 말레이시아 남단의 작은 섬나라를 1인당 국민소득 기준 아시아 최고 부자 국가로 우뚝 세웠으며 지금도 수많은 화물들이 싱가포르를 경유해 세계로 수출되는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싱가포르의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이나 외견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교육 등 우리나라 언론들은 그동안 싱가포르를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부정부패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법집행은 매 정권마다 부정부패 뉴스를 들어야 했던 우리나라 국민에게 싱가포르는 하나의 이상향으로 비춰지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특히 보수 쪽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싱가포르를 세계 최고 부자 국가 중 하나로 만든 리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리콴유가 타계한 뒤 직접 조문을 가 ‘리콴유 전 총리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의 이름은 세계 역사에 새겨져 영원히 기억될 것. 한국 국민도 싱가포르 국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며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올랐던 넬슨 만델라의 장례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박 대통령이지만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에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우리나라 보수가 특히 리콴유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은 아마도 강력한 법집행이 아닐까 싶다. 껌조차 허용되지 않는 싱가포르는 국민의 생활 곳곳에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공공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지 않아도 벌금을 내야하고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금지된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포옹을 하는 것도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지경으로 동성애 금지가 인권탄압이라는 말을 할 수조차 없다.

사용자에 대해 노동자가 저항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권리인 파업의 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용자가 노동자에 대해 너무 많은 봉급을 주는 것도 국가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언론은 당연하게도 국가가 장악하고 있다. 역시 당연하게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는 실릴 수도 없으며 싱가포르 국익에 침해가 되는 기사를 실은 외신의 경우에는 국가로부터 곧바로 소송을 당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싱가포르 언론에는 정치면이 사실상 없으며 일반 국민도 정치에 대해 토론할 수도 없다.

야당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런 힘을 쓸 수도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게 되면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야당 지도자는 선거 이후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되고 결국 파산하게 된다. 1980년까지 의석의 100%를 장악해온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은 너무하다 싶었는지 선거법을 개정하게 되고 몇석이지만 시혜를 베풀듯 야당에게 의석을 내놓는다.

아마도 이런 면들이 우리나라 소수 수구세력들이 꿈꾸는 리콴유 향수의 근거가 아닐까 싶다. 이미 우리나라도 1970년대 이와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추진한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은 ‘한국식 민주주의’로 리콴유가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와 여러모로 닮았다. 게다가 ‘우리 식대로 살자’고 주창하는 북한의 모습도 1인당 국민소득 부분만 제외한다면 리콴유의 싱가포르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숨 막힐듯한 전체주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싱가포르가 그나마 1965년 이후 50년이 흐른 이 시점에도 좋은 나라(Fine City)로 인식되는 것은 엄격한 법집행에 우선한 엘리트층의 청렴함 때문이라고 본다. 리콴유는 법을 어긴 친구를 법정에 서게 할 정도로 이 부분에서 철저했고 그래서 그가 타계했을 때 모두 입을 모아 “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고 울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의 지도층은 어떤가. 최근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시지 때문에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고 정부여당의 고위급들이 수사대상으로 지목되는 등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처절히 반성해도 모자랄 새누리당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에 대한 수사보다는 성완종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사면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 부정부패 수사에 대해 신물이 나도록 보아온 국민 중 누구도 이번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돼 엄격한 법집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이번 수사는 결국 매듭지어지게 될 것이고 힘 없는 몇몇 인사들만이 법의 ‘엄격한’ 잣대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감옥에 갈 것이다. 그리고 부정부패는 이번 정권에 이어 다음 정권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일각에서 아무리 우리나라를 싱가포르처럼 만들자고 주장해도 스스로 법을 피해가는 특권층이 존재하는 한 이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우리 정치 상황을 보면 ‘황하의 물은 100년이 지나도 맑아지지 않는다(百年河淸)’는 말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는 듯 싶다. 싱가포르를 닮고 싶다면 청렴한 지도층과 엄격한 법 집행만이라도 닮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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