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은 책 가운데 정직함을 교훈으로 하는 동화들은 너무도 많았다. 어떤 이야기는 결말이 너무 당연하고 뻔해서 재미가 없을 정도로 정직은 흔한 주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늘날의 이야기들은 뻔하지 않아서 그 시작은 무척 흥미진진한데, 이내 정해진 뻔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처음엔 전면 부인하다가 일부 증거와 증언이 나오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그 머리 좋고 자기관리 철저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의 기억을 스스로 지우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기억력도 나쁘고 자기관리도 엉망인 사람으로 변신한다. 확실한 증거가 나와서 지울 수 없어진 부분에 대해 일부 발빠르게 기억을 회복하고는 사실로 인정한다. 증거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기억상실상태. 곧이어 일부 어쩔 수 없이 인정한 부분에 대한 납득되지 않는 해명이 시작된다.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 어렵다 싶은지, 자신의 해명이 사실이 아니면 정계를 심지어 지구를 떠나겠다고까지 하면서 믿어달라 호소하지만, 이미 스스로가 친 거짓의 올가미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고 만다. 위기와 반전을 거듭하는 진실게임이 계속되는 사이 우리는 반복되는 패턴에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결말부분에 다다르면 우리의 머리 속에 시간 순으로 저장되었던 이야기는 처음부터 다시보기로 자동 재생되고, 결국 온 국민이 배신감과 환멸감으로 치를 떨면서 명망가 목록의 1명을 부패한 인사 목록으로 옮겨 저장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다. 물의를 빚은 인사의 학력과 경륜의 면면을 감안하면 참으로 이해 안 되는 일련의 과정이며, 다음 세대를 짊어지고 갈 우리 아이들이 무얼 보고 배우나 통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왜 이런 패턴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혹여 우리 사회가 ‘정직’이라는 가치에 대해 교육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닐까? 정직함으로 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검증과 보상시스템이 부재한 탓은 아닐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당당하게 사회 고위층 인사가 되어 승승장구할 수 있는 현재의 검증시스템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진정 슬픈 일이다.

성적주의, 성과주의 속에 정직은 중요성이 없는 가치로 전락하고, 눈치 빠르게 상황에 대처하는 권모술수와 영민함 같은 것들에 대해 보상받은 경험들만 축적되어서는 곤란하다. 인성이 좋은 아이가 성공한다는 명제를 내건 책들도 한 때 서점에 깔린 적이 있었지만, 인성이 아니라 성공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최근 들어 국무총리나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지나친 개인사 위주의 인사검증으로 능력 없는 사람만이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필자는 견해가 다르다. 설사 조금 능력이 뒤지더라도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이 청문회를 통과해서 국정을 수행했으면 좋겠다. 장관은 올바른 판단력과 지도력으로 한 부서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할 지도자이지 실무담당자가 아니다. 만에 하나 장관의 실무지식이나 전문성 부족으로 발전의 속도가 조금 더디게 된다고 하더라도, 부패한 인사가 그릇된 방향으로 국정을 농단하는 것보다는 훨씬 견딜만한 일이 아닐까? 옳은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옮기는 것이 길게 보면 진정한 발전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기로에 선 것이 분명하다. 부패와 부정이 판을 치다 결국 선진국 길목에서 미끄러진 남미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성숙한 복지국가로 나아갈 것인지 그 갈림길에 섰다. 이제 경제발전지수 못지 않게 국가 청렴지수가,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관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최근 통과된 ‘김영란법’과 관련한 논의를 보면서, 일단 반부패법이라 할 수 있는 법이 우리나라에서도 통과가 되었고, 반부패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 것만으로도 매우 희망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 그동안의 법의 얼개로는 걸러낼 수 없었던 부정과 부패, 편법적인 청탁에 대해 좀 더 촘촘한 거름망으로 걸러보자는 매우 과감한 시도다. 어찌 보면 가장 정직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던 정치의 영역까지 망라하여 정직하고 깨끗하게 한번 해보자는 결단의 시작인 것이다.

일부 위헌의 소지에 대해 다툼은 있으나 이렇게 빨리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정치권의 비리든 군대비리든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용기 있는 양심선언이 있어 왔고, 그러한 양심선언을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디지털시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거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필자는 감히 대한민국 청렴국가의 미래에 낙관하는 한표를 과감히 던진다. 이제 만인이여, 법 앞에서 정직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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