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고법원은 대법원이다(헌법 제101조 제2항, 법원조직법 제11조). 현재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법원조직법 제4조). 대법원은 거의 모든 사건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직을 맡고 있는 대법관을 제외한 12인 대법관이 4인씩으로 부를 구성하여 그 부에서 재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령 또는 규칙의 해석을 통일할 필요가 있는 경우이거나 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할 경우에 한하여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올려 재판하고 있다(동법 제7조 제1항).

작년 말 국회의원 168명이 대법원 아래 상고법원을 설치해 현재 대법원이 다루고 있는 상고사건의 상당수를 상고법원으로 하여금 처리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원 발의의 형식이나 실은 대법원의 의중을 반영한 법률안이다. 위 법률안이 제출되기 몇 개월 전 대법원장의 자문기구인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상고법원 설치안을 대법원장에게 건의한 바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이를 그대로 반영하여 발의한 것이다. 이 개정법률안을 두고 지금 한창 찬반양론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이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는데,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의 당위성을 역설한 반면, 법무부와 변호사단체는 이에 반대하면서 대법관의 증원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일반 사회단체들도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안에 반대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수가 연간 3만5000건 정도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사건을 10여명의 대법관에게 처리하도록 맡기는 것은 무리이다. 그동안 상고허가제, 심리불속행제도 등 임시처방으로 넘겨왔는데, 시급히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의 해결책은 단순히 대법관의 부담을 줄이려는데 그치는 안이어서는 안 되고, 그러면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더 보장하는 안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법원을 위한 법률개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률개정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위 개정법률안은 아무리 보아도 국민을 위한 안이 아니다. 그리고 위 안대로 상고법원이 설치되면 최고법원의 기능이 두 기관에게 나누어지는 모습이 된다. 외국에 그런 예는 없다.

상고법원의 설치에 관하여 법리적인 면을 생각하여 본다. 첫째로 위헌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헌법상 최고법원은 대법원 뿐이므로 위 안의 상고법원은 대법원 산하의 각급법원일 수밖에 없다. 그런 법원이 어떻게 최종심이 될 수 있는가? 더욱이 대법관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데, 위 안을 보면 상고법원의 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그런 법관에게 어떻게 최종심을 맡길 수 있는가? 그래서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상고법원의 판결에 법령위반 등의 사유가 있으면 대법원에 특별상고할 길을 위 안이 열어놓고 있는데, 그러면 결국 우리 재판제도가 4심제로 된다. 이런 문제점은 위 사법정책자문위원회에서도 제기됐었다. 위 개정법률안은 우리나라 사법질서의 체계를 흔들 위험이 있다.

이에 필자는 위 개정법률안에 반대의 뜻을 표하며 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사건이 많아 현재의 정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면 첫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정원의 증원이다. 법원조직법의 개정으로 증원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대법원을 제외하고는 현재 증원에 반대의 뜻을 표하는 곳이 없다. 대법원만 목소리를 낮추면 곧 증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 혹시 증원하면 대법관의 권위가 떨어질까 걱정되어 대법원이 반대하는가? 대법관의 권위보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기도 하려니와 권위의 유지는 수의 다과가 아니라 공정한 판결, 당사자들이 납득할 판결, 국민의 신뢰를 받을 판결을 내놓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증원한다면 몇명을 증원하는 것이 좋을까? 현재 30명, 50명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와 있는데, 필자는 재판을 담당할 대법관의 정원을 8개부를 구성할 32명으로 증원할 것을 제안한다.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로 권위 이외에 전원합의체의 구성이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필자의 안대로 8개부를 두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대법원장과 각부의 선임대법관 8명, 도합 9명으로 연합부를 구성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선임대법관이 다른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다른 구성원들에게 서면 또는 연합부에 출석하여 구술로 의견을 개진할 길을 열어놓으면 연합부판결에 대법관 전원의 의견을 담을 수 있다.

대법관의 증원이 정 안 된다면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부대법관의 임명이다. 이 역시 법원조직법의 개정으로 쉽게 이뤄질 수 있다. 대법원에 대법관 아닌 법관을 둘 수 있는 길이 헌법상 열려 있다(헌법 제102조 제2항). 법원조직법 제5조 제1항에 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칭호를 판사 한 가지로 정해 놓고 있는데, 그 제1항에서 우선 칭호를 부대법관과 판사 두 가지로 고치고 대법원에 대법관과 동수의 부대법관을 두기로 하면 된다. 이로써 대법관 2명과 부대법관 2명으로 한 부를 구성하도록 하여 대법관을 증원하지 아니하고 상고사건을 처리할 인력을 배로 늘린다. 여기에 대법관의 정원을 조금 늘려 8개부를 설치하도록 하면 위 제1해결책에서 말한 연합부 구성에 관한 것도 그대로 원용될 수 있다.

대법관의 증원 또는 부대법관의 임명제도가 하루 속히 이루어져 최고법원의 재판을 받아보고자 하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대법원의 모습을 보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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