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진행한 이혼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필자는 아주머니 측을 대리해서 아저씨를 상대로 이혼을 요구했다. 상당한 금액의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포함해서 자녀들 세 명의 양육권도 아주머니가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혼 소송은 만 4년 정도 진행되었다. 아저씨의 입장은 그랬다. 자신은 아주머니를 여전히 사랑하고, 아주머니가 주장하는 내용의 잘못도 하지 않았으므로 위자료 지급은 물론 이혼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분재(分財)를 요구하는 재산도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므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고,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놔두고 가출했기 때문에 자녀들의 양육권도 줄 수 없다고 극렬히 다투었다. 이혼 소송의 각 쟁점마다 격전이 벌어졌다.

혼인 파탄 사유에 관하여 잘잘못을 가리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고, 재산 형성과정과 그 기여도에 관한 주장과 입증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시간이 걸렸다. 여기까지는 이혼 사건 처리에서 일어나는 흔한 과정이나, 이 사건에서 유독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했던 것은 바로 아이들의 양육권을 누가 보유하느냐를 판단하는 쟁점이었다.

재판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간이 흘러 재판부가 바뀌기를 두세 차례. 변론기일과 조정기일이 도합 스무 차례 정도 실시된 끝에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액수의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지급받으라는 선고가 난 대신 양육권은 아주머니에게 부여되었다. 쌍방에서 즉각 항소했다.

소송 과정이 오래 걸리고 힘이 들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사건 당사자들은 다른 모든 것은 양보할 수 있으나, ‘하늘이 두 쪽 나도 내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필자는 아주머니에게 ‘조금 더 많은 재산을 받고 아이들을 상대방에게 키우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라는 권유를 했다가 엄청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양육권을 아주머니가 보유하는 대신 1심에서 선고된 판결금을 이의 없이 수령하는 내용으로 조정을 했다. 소송대리인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1심보다 더 많은 돈을 재산분할과 위자료로서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정도 선에서 길고 길었던 싸움을 마무리했다. 미취학이었던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부모의 이혼사건이 종결된 것이다.

길지는 않지만 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훌륭한 변호사가 가진 덕목에 관하여 생각해본 것이 있다. 변호사에게 필요한 재능은 ① 지식(知識)과 논리(論理), ② 순발력(瞬發力)에 ③ 투지(鬪志)가 가미되면 완벽한 변호사가 된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엄청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시간은 대부분 지식과 논리를 연마하는 데 소요된다. 그러나, 지식과 논리는 변호사의 출발일 뿐이고 그 외의 덕목은 현업에서 수련된다. 증인신문을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그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우발적인 상황에 순발력이 없다면 대처가 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조금은 열세에 있지만 형평이나 정의관념에 반하는 결론을 막기 위해서는 투지가 필수적이다.

물론 의뢰인이 많은 수임료를 지불하는 것이 투지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투지를 불태우면서 재판에 임하더라도 재판장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한다거나, 증거관계가 부족하거나 사건의 내용이 열세에 있을 때 그 투지를 불태우기가 몹시 어렵다. 해서, 투지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앞에 예를 들었던 사건에서 1심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는 내용으로 조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의뢰인이 필자에게 물었다. “제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은 같은데, 왜 당했다는 생각이 들까요?” 그런 감상은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오랜 기간 투지를 불태우면서 싸워왔던 사건에서 상대방을 끝내 제압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더 싸우기 싫어서 옥쇄(玉碎)의 각오를 꺾었다는 분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쪽 당사자가 전승을 하거나 전패를 하는 것은 마지막에 보면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경우가 많다.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치열한 전투를 거친 끝에 전승의 결과를 받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손절매를 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 전문가로서 전략적인 판단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균형감각(均衡感覺)도 이번에 변호사의 덕목으로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필자도 이 사건에서 조정에 응하지 않고 항소심과 상고심 판단을 기다려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생결단을 내어보는 편이 아쉬움이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너무 잘 하신 일이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두꺼운 얼굴’도 변호사의 덕목에 넣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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