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휴무제가 시행되기 전 법원 출퇴근 문제의 화두는 단연 토요일 출근 여부였다. 특히 수도권 소재지 법원의 경우 적지 않은 판사가 서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왕복 2시간 정도 걸렸다. 더구나 그 옛날에는 ‘9시까지’ 출근하고 ‘6시부터’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9시부터’ 출근하고 ‘6시까지’ 퇴근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는 판사님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토요일에는 출근했다가 점심 먹고 퇴근하는 결과가 되었고, 출퇴근 자체가 소모적이니 상당수의 사무실이 비어 있는 일이 많았다(물론 토요일 오후 운동을 즐겼던 판사들은 매우 높은 토요일 출근율을 기록했다). 한 법원장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셨는지 아니면 재판이 없는 요일을 선택하시다 보니 그렇게 하셨는지 당시 막 신설된 법관회의(형사, 민사, 중액, 소액 등 다양한 법관회의 포함)를 토요일 11시에 개최하기도 하였다. 법원장님의 이런 처사에 용기 있는 판사는 동료 판사들의 응원에 힘입어 “법원장님, 법관회의를 평일에 개최하여 주시기를 청하옵니다”라고 하고, 법원장님께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소액 판사는 이유를 말하지 않사옵니다”라고 답하는 희극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재택근무제가 있었지만, 법원장 허가를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당시 많은 판사는 판사의 일이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심지어 회식 장소에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위임, 도급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과 근무시간 규정은 잘 맞지 않았다.

최근 만난 한 법무법인 대표는 변호사들이 출근을 늦게 하고, 일 때문에 찾으면 자리에 없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속상해했다. 사건이 잘 풀릴 경우에야 변호사가 출근을 늦게 하건, 자리를 시도 때도 없이 비우건 다 용서가 되지만, 문제가 터졌을 때 출근을 늦게 하거나 자리에 없으니 사달이 나는 것이 눈에 선하다. 대표와 고용변호사의 법률관계는 형식적으로는 당연히 ‘고용관계’로 ‘일정 시간의 노무제공’만으로 충분하겠지만, 변호사 업무의 성격상 실질에 있어서는 ‘위임 또는 도급’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고용변호사에게 사무의 처리 또는 일의 완성을 과제로 주고, 그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그 변호사가 몇 시간의 근로를 하는지는 일의 성과에 견주어 보았을 때나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변호사들에게 ‘9 to 6’(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것)은 당초 잘 맞지 않는 옷일 수 있다.

지난 4월 13일 삼성전자가 자율출퇴근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하루 기본 4시간, 40시간을 주 5일 안에 근무하기만 하면 되고, 나머지 출퇴근 시간을 근로자의 자율에 맡겼다. 업무집중도를 높이고, 창의성과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조만간 다른 삼성 계열사들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SK, LG, 한화, 아모레퍼시픽 등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KBS는 하루 8시간을 근무하지만, 핵심근무시간(11시~4시)을 채우면 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는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한다. 철야근무가 많고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업무 성격이 자율출퇴근제 도입의 이유였다. 물론 육아부담을 덜고, 직원들의 자기계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근로기준법 제52조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규정하고 있다.

사기업뿐만 아니라 행정자치부도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0년 도입된 유연근무제는 시차출퇴근, 근무시간선택, 집약근무, 재량근무, 재택근무, 스마트워크근무 등인데, 이 중 시차출퇴근이 행자부 직원들의 54.4%가 선호하는 제도이고, 다음이 근무시간선택(22%), 스마트워크센터근무(21.6%), 재택근무(10%) 순이었다. 대기업, 행정부의 이런 변화는 당장 법무법인 자문팀의 근무시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의뢰인 회사의 담당자가 퇴근하는 4시 이후에 회의하자고 할 수도 없고, 전화 문의를 할 수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금요일 오후에 작업하려고 미루어 놓았다가 담당자가 3박 4일(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여행을 떠나면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수동적인 변화보다는 더 적극적인 변화는 어떨까? 일의 절대량이 많아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야 논외로 치고, 법원 재판시간에 매여야 하는 문제도 별론으로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변호사의 선택적 근로제는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함으로써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자율에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더구나 누군가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 하는 형식적인 야근으로 몸과 마음을 혹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번 해 볼 만할 것 같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