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종영한 ‘피노키오’라는 드라마에는 방송사 수습기자들이 나온다. 주인공들은 서울 시내 경찰서들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사건을 쫓는다. 나도 ‘피노키오’를 보며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취재하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경찰서뿐 아니라 종합병원 응급실과 장례식장도 수습기자라면 빼놓을 수 없는 취재 현장이다. 응급실에선 긴급한 사고나 변사 사건, 장례식장에서라면 혹시 놓쳤을 유명인사의 사망 사건 등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장례식장에서도 망자(亡者)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특종이 될 만한 기사거리를 척척 물어 온다. 물론 그렇게 취재가 되는 경우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기자도 ‘빈소’ 취재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언론이 주목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20대 여성의 빈소에서 친구들을 상대로 취재를 하다 멱살잡이를 당해 끌려나온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밤새 그 빈소 앞을 쭈뼛쭈뼛 서성거려야 했다. “기자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는 어떤 선배의 끈질긴 지시 탓이었던 듯 싶다.

수습기자 생활이 그랬다. 좋든 싫든 시키면 해야 했다. 그 이후로도 사건 기자로서 인명사고가 날 때마다 빈소에서 유족과 지인을 취재할 일이 많았다. 대개는 홀대를 받으면서 쫓겨나곤 했다. 어찌 보면 내가 취재 당사자라고 해도 상(喪)중에 취재한답시고 다가오는 기자들이 반갑지 않은 게 당연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이유로, 슬픔에 젖은 남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접근해야 하는 게 기자의 숙명일지 모르다. 하지만 기자는 지금도 빈소 취재가 불편하고, 유족에게 미안한 마음 탓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확히 1년 전쯤 빈소가 곧 취재현장이던 때가 있다. 바로 온 나라를 눈물 바다로 침몰시킨 ‘세월호 참사’다. 전국 모든 언론사의 사건 담당 기자들이 전남 진도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로 모여들었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탑승인원 476명 가운데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은 지금껏 돌아오지 않은 최악의 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서초동 법조 현안을 챙긴다는 핑계로 역사적인 빈소 취재 현장에는 가지 못했다. 유족과 실종자 가족이 뒤엉켜 울고 서로 웃으며 위로하다 이내 다시 울고 마는 그곳. 단지 동료의 경험담으로만 전해들었을 뿐이지만, 뇌리에 박힐 만큼 생생했다. 그곳에서도 기자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희생자 가족만큼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탓이 컸다. 뜻하지 않은 언론 종사자들의 실수 또는 속보 경쟁으로 유족과 실종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잦았고, 그럴수록 언론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망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을 채우는 데 급급했기 때문일까. 참사의 상처를 보듬어달라는 요구는 지금도 답보 상태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후유증은 컸다. 그곳에 다녀온 기자들은 누구나 우울증세를 호소했다. 급기야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세월호 참사’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을 위해 정신과 치료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최근 취재 차 빈소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던 한 대기업 회장이 지난 9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전날까지도 기자회견을 열어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이 억울하다며 호소하는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에 그의 자살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이튿날 한 중앙일간지가 그와의 사망 직전 “정치권 실세들에게 불법 자금을 건넸다”는 전화 인터뷰를 보도하면서 정국이 혼돈에 빠졌다. 통화 내용과 관련한 메모도 시신과 함께 발견됐다. 다수의 법조 출입기자들이 지방에 차려진 그의 빈소로 향했다. 기자라면 누구나 메모를 남긴 배경과 경위, 그의 마지막 언행 등이 궁금했기에 유족과 지인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게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빈소 취재의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족의 낯빛을 보는 순간, 수습기자 시절 쭈뼛하던 기억과 세월호 참사 취재 경험담 등이 떠올랐다. 어두운 표정의 유족에게 고인에 대해 뭔가를 물으려던 생각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 만에 다시 서초동 검찰 기자실로 돌아왔다.

검찰 수사를 받던 고인의 잘잘못과 무관하게 그가 남긴 ‘데스 메시지’는 사건이 됐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법조기자실’로 취재의 배턴이 넘겨졌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향후 검찰 수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다만 그가 육성으로 하고자 했던 얘기를 추가로 들을 기회가 없기에, 그가 살아온 궤적을 재구성하며 형사사법 절차의 테두리 안에서 뭇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는 게 법조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닐까. 나처럼 용기가 부족한 이에겐 난제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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