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은 준엄한 목소리로 “피고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세요”라고 말하였다.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한참 동안 진술을 하였다. 악어의 눈물인지 진정으로 반성을 하는지 알 길은 없다.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용서를 받기에는 너무 큰 죄를 저지른 피고인도 있다. 문득 가정법 과거는 현재사실에 대한 반대이고, 가정법 과거완료는 과거사실에 대한 반대라는 내용으로 영어를 공부할 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이전에 역사 공부를 하면서 역사에 가정을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너무나 많은 요소로 이루어지는 역사에 가정을 하게 된다면, 바둑알을 놓는 위치에 따라 바둑의 판세가 달라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가 생기기 때문에 갑론을박을 하다가 결론을 내리지도 못하고 논쟁이 끝나는 것과 비슷한 결과가 생기는 것에 대한 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각의 링에서 벌어지는 권투 경기가 승리를 위한 땀방울의 경쟁 장소라면, 법정에서 다퉈지는 법적 분쟁은 인생의 축소판이자 인생의 한 매듭이다. 형사재판이란 기본적으로 형법이 기본 프리즘이 되어 국가형벌권 행사의 최종 판단을 받는 것이다. 최근에는 특별법이 너무 많아서 이름을 익히기에도 바쁘다. 중요 사건이 발생하면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형량을 높이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형벌의 종류와 범위에 대해 입법 형성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는 이유로 입법정책의 문제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상실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위헌 결정을 선고하기도 한다.

가끔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가 하는 물음을 해보는 때가 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일에 울컥 화를 내는 바람에 큰 일이 벌어지곤 한다.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 휘두르는 형국이다(見蚊拔劍). 순간적인 격분을 참지 못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법정에 서 있는 피고인들을 볼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범행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도 인생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언론에 보도되는 분노범죄의 증가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항소기각을 선고받은 고령의 어떤 피고인은 휘청거리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고인은 과연 생전에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이 방청석에서 흘러나왔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의기양양하게 법정에 들어왔던 어떤 피고인은 실형이 선고되자, 상의를 벗어서 가족에게 인계하고는 10초만이라도 가족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젊은 피고인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고 하였다. 방청석에 와 있던 피고인의 모친은 피고인을 얼싸안고 피고인과 함께 한참을 울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어떤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되자 만감이 교차하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피고인석에 한동안 서있었다. 영어(囹圄)의 몸에서 벗어나는 기쁨이었을지도 모른다.

범죄의 피해자 유족이 재판을 참관하는데 피고인이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하자, 유족은 오열을 하였다. 법정을 나가서도 유족이 내뿜는 울분의 포효는 그치지 않았다.

수십 억원의 사기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유로 기소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항소심 법정에서도 당당한 표정이었다. 과연 몇 달 후에도 당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의외로 성범죄 관련 사건이 많다. 피고인측에서는 피해자측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 동안 이러한 사건들이 덮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최근에 범죄가 늘었는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것 자체가 불만인 사람들은 동일한 조끼를 입고 화가 난 얼굴로 법정에 앉아 있다가 투덜거리며 법정을 빠져 나가기도 한다.

오늘도 법정에서는 응축된 피고인들의 인생 한 장면이 펼쳐진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할 때가 있다. 그러나 회오리바람이 불더라도 아침나절을 넘기지 못하고(飄風不終朝),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하는 법이다(驟雨不終日). 폭풍우가 지나간 들판에는 새들이 지저귀며 날아다니는데, 우리 인간들은 먹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한줄기에도 감사할 줄 모른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기를 희망하기보다는 ‘현재’를 ‘선물’(present)로 생각하고 만족할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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