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을 찾아오는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 관광객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곳은 관광보다는 교육목적으로 많이 활용되는 장소이다. 회기 중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들이 하루에도 수십대에 이른다. 벚꽃 피는 시즌에 여의도 윤중로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열린 국회를 지향하는 마당에 국회는 모처럼 의사당 문을 활짝 열어 여의도에 봄나들이 나온 시민을 반갑게 맞이해 주어야 한다. 이때 국회가 이들의 문화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 주는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 국회의사당과 같은 대형 공공장소는 다수 방문객의 미적 감성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 측에서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국회를 찾는 내방객에게 딱히 보여줄 만한 미술품은 건물자체를 빼놓고는 많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외국 여러 나라의 의사당은 돔의 형태로 지어진 것이 많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항은 돔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상징성은 밖에서 감상하는 것보다 건물 안에서 올려다 볼 때 진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사당의 경우 3층 중앙 홀에서 올려다보면 여러 갈래의 건축구조물이 중앙에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의사당의 많은 건물들이 이와 같은 의견합일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성 때문에 돔의 형태를 선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회의 상징성을 잘 느껴볼 수 있는 국회의사당 중앙 홀에 백남준 선생의 작품이 전시 중에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감정가 10억짜리 고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문화예술 애호가인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을 잠시 빌려온 것이다. 이 작품은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인포아트’전에 출품되었던 것으로 백 선생의 작품 중 움직일 수 있는 것 중에서 최대 크기이다.

백 선생 작품의 국회입성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이분과 국회와의 인연은 1998년 국회개원 5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하여서다. 당시 백 선생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천호선 공보국장이 한국을 방문 중인 선생을 국회 앞 잔디밭 광장으로 모시고 가서 기념조형물이 있는 분수대 현장을 보여주면서 민주주의를 상징하거나, 통일 대한민국의 염원을 담은 조형물 사업을 제안했다.

백 선생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안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뉴욕에 돌아 간 직후 바로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때부터 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국회를 위한 기념 조형물의 설계도는 완성되었지만 작품선정심사위원회 심사과정에서 안타깝게도 2위로 탈락하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였다. 결국 선생의 작품을 국회의사당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국회의사당 조형물 사업에서 탈락했지만 그 후 선생은 투병 중에도 여의도 한강변에서 우리나라의 해방을 주제로 한 레이저아트로 초대형 태극기가 펄럭이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구상을 한 바 있으나 모두 무산되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와 같은 사연을 알고 있었고 국회의사당을 랜드마크화 해 줄 그 무엇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국회 개원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백 선생의 작품을 설치하려고 시도해보았다. 국회에 미술품을 설치하려면 세계적 명성이 있는 우리나라 출신 작가의 것이 나을 것 같아 50주년 당시 구상하고 출품했던 ‘DNA 형상을 주제로 한 통일탑’을 다시 설치해 보고자 했다. 당시 국회 출품작의 설계도면을 가지고 있는 백남준 기념 사업회를 통해 가능하다는 통지는 받았지만 결국 예산부족으로 이 마저도 실현하기 어려웠다.

플럭서스 운동가로,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설치미술의 선구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그에 대한 평가는 내년의 추모 10주기를 앞두고 다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한국이 낳은 예술가로서 뉴욕에서 기라성 같은 서양예술가들과 맞장뜨며 불사른 그의 예술 투혼, 비디오라는 새로운 문명이기(文明利器)를 활용한 예술영역의 확장정신이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한 마디로 백남준은 현대예술사조의 첨병이었다.

이번 국회의사당 중앙홀의 작품은 미국식 마차에 한복 입은 마네킹 여인이 앉아 있다. 마부는 비연속적인 영상을 끊임없이 송출하는 TV 모니터로 만들어져 있다. 마차를 끄는 말은 기계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기발한 착상이다.

국회의사당은 대표적인 공공미술의 공간이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숨 쉬는 곳이다. 이번에 중앙 홀에 전시되는 선생의 작품을 여의도 벚꽃놀이에 나온 많은 시민들에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의사당 건물 내 중앙 홀까지 시민의 접근을 허용하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상상력 속에 소통-운송이란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음미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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