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이력을 나열하는 뜻은?
변호사는 원래 광고와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변호사는 현수막을 설치하거나, 애드벌룬, 도로상의 시설 등에 광고물을 비치·부착할 수 없고, 이메일이나 문자, 팩스, 우편발송 광고를 할 수도 없다. 자동차나 전철 내외부에 광고물을 부착해도, 전단지를 뿌려도, 명함을 나눠줘도 안 된다. 거리에 무료배포 전단을 비치해도 안 된다. 확성기를 쓰거나 샌드위치맨 모양으로, 또는 어깨띠를 두르고 광고해도 안 된다. 그나마 예전보다는 변호사 광고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다는 게 이 정도다. 변호사의 ‘품위유지의무’가 강조되면서 광고 방법을 극도로 규제한 것이다. 실제로, 흔하게 보는 광고는 신문에 박스 형태로 내는 ‘개업인사’와 대형 법무법인의 ‘변호사 영입인사’ 광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수임제한 해제 안내’라는 새로운 신문광고가 새로 등장했다. 소위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법이 개정되면서 판·검사를 퇴직하고 개업한 변호사는 1년 동안 퇴직 전에 근무했던 지역의 사건을 수임할 수 없게 했는데, 그 ‘1년’이 지났으니 이제 사건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알리는 광고가 ‘수임제한 해제 안내’ 광고다. 일간신문의 어느 기자는 이 광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임제한이 해제되는 사실을 고지한다는 것은 ‘전관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사건을 많이 의뢰해 달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아름다운 광고를 기다린다.
어쨌든, ‘개업인사’나 ‘변호사 영입인사’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변호사에 대한 신문 광고는 소위 ‘전관’들의 전유물이다. 광고의 요지는 ‘정든 법원·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새출발한다’거나 ‘무슨 무슨 요직을 역임하신 분을 우리 법무법인에서 영입했다’는 것이다. 판사·검사로 오랫동안 봉직해왔다면 그것만으로도 그가 유능한 변호사가 될 수 있겠다고 예상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런 분이 변호사로 새출발한다거나 그런 분을 영입했다고 광고하는 것은 당사자나 법무법인으로서는 필요한 일일 수 있고, 법률소비자에게도 유익할 수 있다. 나처럼 판사든 검사든 아예 현직을 거쳐보지 못한 재야 변호사로서는 잘 알기 어려운, 검찰·법원의 내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니, 부러운 일이지만 수긍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그 광고내용에는 불만이다. 광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느 상업광고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이한 내용이 담겨 있다. 광고하려는 대상 변호사가 판사·검사로 임용된 후 그간 거쳐 온 임지와 지위가 깨알같이 주르르 나열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광고는 앞서의 일간신문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거쳐 온 임지에서 수사·재판되는 사건은 나의 힘이 통하는 곳이니 그곳의 사건은 내게 맡겨 달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억울한 누명(?)을 벗어버리려면, 판사나 검사출신 변호사의 개업광고나 변호사 영입안내 광고는 그냥 ‘내가 판사로서, 또는 검사로서 10년~20년간 성실하게 근무했다’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굳이 그가 거쳐 온 임지와 역임한 지위까지 나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산간벽지에서라도 판사로서 또는 검사로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면, 그 경력은 중앙 법원·검찰의 요직을 거쳐 온 분이나 별 차이 없는 소중한 경력이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법원과 검찰에서 오랫동안 특정 분야를 수사하고 재판하면서 전문성이 생겼으니, 그것을 광고하고 싶어서지 임지나 지위가 나열된 개업광고와 전관예우는 무관하다”고. 그렇지만, 법률은 이미 변호사에게 ‘주요취급업무’를 광고할 수 있게 하고, 일정 요건에 따라 ‘전문변호사’로도 등록하고 그것도 광고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니 그의 성공적인 변호사 활동을 위해서 굳이 그가 거쳐 온 임지나 지위를 나열하는 광고까지 허용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아니,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부당하다. 변호사법은 이미 변호사에게 ‘수임을 위하여 재판이나 수사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연고(緣故) 등 사적인 관계를 드러내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선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관의 이력을 나열하는 광고는 허용하면서, 다른 ‘품위’에 관련있는 광고들은 죄다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의 품위 유지를 위해 광고방법을 규제하면서, ‘전관예우’와 직결된다고 의심되는, 그래서 가장 품위 없어 보이는 광고는 오히려 허용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에 대한 관련법령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직에서의 이력을 앞세우는 대신, “법관으로 20~30년 일했지만, 변호사로서는 초보이니 앞으로 공부하면서 열심히 하겠다”며 변호사로서의 자세와 의욕을 알리는 아름다운 광고를 보고 싶다. 변협 협회장 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후 전관 이력이 없는 분들이 연거푸 협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이력을 나열하는 대신 변호사로서는 초보임을 앞세우며 개업광고를 하는 겸손한 분이 나타난다면, 그런 분을 변협의 수장으로 모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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