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대전(Corpus Iuris Civilis)은 법의 요청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명예롭게 살라(honeste vivere). 다른 사람을 해하지 말라(alterum non laedere).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라(suum cuique tribuere). 이러한 요청은 글쓰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명예롭게 글을 쓰는 것, 그리고 그 글의 가치 중 타인의 몫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글쓰는 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표절(剽竊)은 그 덕목을 무너뜨린다. 우리 사회에서도 표절은 심심치 않게 문제된다. 특히 표절은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하곤 한다. 글쓰기를 한 자는 비판의 도마 위에 놓여진다. 한편에서는 그의 부도덕성을 탓하는 흥분되고 절제되지 않은 목소리가 들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왜 거악(巨惡)에 둔감하면서 소악(小惡)에 그리 민감하냐는 당사자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아쉽게도 무엇이 표절인지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대신 정치적 구호와 감정적 대응이 언론과 인터넷을 뒤덮는다. 표절 여부는 정직한 글쓰기와 그렇지 않은 글쓰기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인 만큼 진지하고 심중하게 탐구되어야 할 주제이다. 하지만 고발과 선동과 변명이 있을 뿐, 토론과 검증과 반성은 없는 셈이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남형두 교수의 신간 ‘표절론(현암사, 2015년 2월)’은 이러한 아쉬움을 지울 역작이다. 저자가 오랫동안 진지하게 연구하여 온 바를 체계화한 성과물이다. 표절 논의의 현장을 마땅히 지배해야 할 이성과 합리성을 복권시킨 책이다. 이 책의 큰 특징은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논의에서 출발하여(제1부 총론) 개별적인 쟁점에 대한 충실한 검토를 거쳐(제2부 각론)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제3부 가이드라인). 그만큼 가이드라인의 이론적 토대가 탄탄하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적인 법서(法書)와는 달리 표절이라는 사회현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에 정직하고 충실하게 대응한다는 점이다. 때로 법률가들이나 법학자들은 법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회현상에 접근하고 그 현상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를 풀어내는 다양한 접근방법을 스스로 제약한다. 그런데 ‘표절론’은 전통적인 법적 시각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 정책적 시각까지 녹여낸다. 표절을 둘러싼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유연하게 고민한다. 이러한 유연성은 로펌에서의 실무경험, 외국법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기반 위에 학자적 통찰력과 철저함까지 더한 저자의 역량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두 가지 인색함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하나는 다른 자료들에 쉽게 의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영감과 사고방식을 불어넣는 데에는 인색해질 위험이다. 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의지한 다른 자료들의 가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공적을 드러내는 데에 인색해질 위험이다. ‘표절론’은 이러한 위험을 그대로 드러내어 직시하고 철저하게 파헤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불편한 책인지도 모른다. 서평을 쓰는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의 글쓰기 태도와 그로부터 파생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반성하였다. 그러나 이는 건강한 불편함이자 성찰적 불편함이다. 그러한 긍정적 의미의 불편함을 선사한 저자에게 감사한다.

물론 무엇이 표절인가 하는 어려운 질문이 이 저서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답변될 수는 없다. 본래 표절의 경계는 불명확하고 흐릿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경계의 모호함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여전히 표절과 관련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것이고, 악의의 표절자를 놓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표절의 경계를 둘러싼 진지한 논의와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남형두 교수의 ‘표절론’이 그러한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튼튼한 주춧돌이 되리라는 점이다. 그 점에서 ‘표절론’의 출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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