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2가지 사례와 함께 시작합니다.

하나는, 수년 전 최고법원 법관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신 분이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한 이야기 입니다. 즉 매 주말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김밥 2줄을 사가지고 가서 한줄은 점심으로, 또 한줄은 저녁으로 때우면서 사건처리에 몰두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법원 내에 법관으로 구성된 각종의 연구회가 많이 운영되고 있고, 일부는 최고법원 법관이 전통적으로 회장직을 맡아 매월 정기적으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이고 또한 열성적인 모습에 존경심과 신뢰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마음 한 구석에서는, 법관들이 특히 최고위직 법관들이 밤낮없이 공부하고 일에 매몰되어 지내는 것이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즉 고위직 법관이 되면 우리나라나 사회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사색하여 그 침전물을 판결에 담아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내오면서 그 원인으로서 한 세대 이전에 사법부가 겪었던 불행한 경험들, 예를 들어 국가배상법 위헌사건 등으로 법관들이 불명예퇴직한 사실이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막연하게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저)’라는 책을 읽고서는 그 해답을 명확히 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통찰력있게 지적하였습니다.

인간은 기묘한 존재이어서 ‘자유’와 관련된 2가지 상반된 심리학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여 종래의 속박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자유를 얻게 되면 고독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유의 부담(고립)’을 견디지 못해 다음의 2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자유를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희구하게 되어,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는 ‘노예근성’을 보여주게 된다.

다른 하나는 일상적인 일에 매몰하여,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가 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고, 호의호식하지만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하여 인간은 자기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되면, 혹은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게 되면(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게 되면),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불안해 진다. 그 결과 외부의 커다란 힘이 적당한 틀에서 자기를 지배하고, 규정해 주기를 바라며, 일상적인 일에 매몰되어 버림으로써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창의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물론 1941년 나치즘과 파시즘이 번져가는 것을 우려한 저자가 이를 견제하고 ‘적극적 의미의 자유’를 찾아나서기 위해 쓴 책입니다마는, 7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여기에서 구태여 위 글에서의 ‘인간’을 오늘날 우리나라의 법조사회에서의 ‘사법부구성원’으로 대체하여 중언부언하지는 않겠지만, 그 뜻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법부구성원 여러분들께서, 특히 경륜이 오래되고 사법부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분들께서는, 사법부를 둘러싼 인접권력과의 관계에서 혹시라도 정체성을 소홀히 하고, 알게 모르게 외부의 힘에 의해서 주어진 틀 속에서 안주하려는 생각은 없는지 성찰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법부 구성원들은 “착하고 똑똑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또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받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서는 귀신(鬼神)이면서, 자기보다 강한 존재에 대해서는 등신(等神)이라는 평가를 받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신사는 결코 자기의 생각을 바닥까지 드러내지 않는다”고 서양의 금언은 말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선비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부구성원들은 ‘권한과 책임에 걸맞는 통찰력과 용기’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어느 철학교수가 오늘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충고와 같이, ‘이제 공부를 멈추고, 생각을 시작’할 때입니다. 배움은 많지만 깨달음과 행동이 뒤따르지 않을 때에는 헛된 공부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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