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39551

I. 사실관계
이 사안은 원고가 자신을 피고회사의 대표이사로부터 해임하는 사안 등을 결의한 두건의 임시주주총회결의의 부존재 등을 확인하는 소를 제기한 것이다(원고의 청구 중에는 그밖에도 (i) 피고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대표이사 지위를 확인하고, (ii) 피고회사의 주주임을 주장하는 나머지 피고들을 상대로 원고가 피고회사의 주주임을 확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원심에서는 주권발행 전 주식의 이중양도에 관한 논점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으나 지면 관계상 이 평석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이 판결에서 중요한 논점으로 다투어진 것은 위 소에서 누가 피고회사를 대표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피고회사의 등기부에 따르면, ① 위 두 건의 임시주주총회 결과 X가 대표이사로 등기되었다가, ② 원고측 인사들이 제출한 2012. 6. 28.자 주주총회 의사록에 따라 A가 대표이사, 원고와 B 등이 이사로 임원변경등기 되었고, ③ 이후 2012. 11. 8. A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위 B가 그 직에 취임하는 등기가 이루어졌다. 실제로 원고측이 ③의 교체를 한 것은 X 등이 A, B, 원고 등을 상대로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가처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가처분 사건의 법원은 2012. 11. 19. 대표이사인 A, 이사인 원고와 B 등의 직무집행을 각기 정지하고, X를 피고회사의 대표이사 직무대행자로 선임하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③에서 보듯이 위 가처분 신청 이후로서 가처분 결정 이전인 2012. 11. 8. 전격적인 대표이사 교체가 이루어진 탓에, 가처분 결정의 내용과 등기현황이 불일치하게 되었다. 가처분 결정에 따른 등기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원고는 위 가처분의 내용을 잘 알면서도 2013. 2. 25. 피고회사의 대표이사를 B로 정정하는 당사자표시정정 신청을 하였다. 이후 소송서류들이 모두 B에게 전달된 상태에서 원심 변론이 종결되었다. 결국 이처럼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가처분이 내려지기 이전에 해당 대표이사가 교체된 경우 신대표이사와 직무대행자 중 누가 대표권을 갖는지가 주된 쟁점이 된 것이다.

II.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주식회사 이사의 직무집행을 정지하고 직무대행자를 선임하는 가처분은 성질상 당사자 사이뿐만 아니라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효력이 미치므로 가처분에 반하여 이루어진 행위는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무효이므로 가처분에 의하여 선임된 이사직무대행자의 권한은 법원의 취소결정이 있기까지 유효하게 존속한다”는 종래의 판례(대법원 1991. 12. 24. 선고 91다4355 판결)를 확인하였다. 통상의 경우와 달리 사안처럼 신대표이사가 가처분 결정 이전에 취임하여 구대표이사에 대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 등의 등기가 불가능했던 점에 관하여는, “등기할 사항인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은 상법 제37조 제1항에 의하여 이를 등기하지 아니하면 위 가처분으로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하지만 악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할 수 있고,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및 이사에 대한 직무집행을 정지하고 그 직무대행자를 선임하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은 그 결정 이전에 직무집행이 정지된 주식회사 대표이사의 퇴임등기와 직무집행이 정지된 이사가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등기가 경료되었다고 할지라도 직무집행이 정지된 이사에 대하여는 여전히 그 효력이 있으므로 그 가처분 결정에 의하여 선임된 대표이사 및 이사 직무대행자의 권한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반면에 그 가처분 결정 이전에 직무집행이 정지된 이사가 대표이사로 선임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선임결의의 적법 여부에 관계없이 대표이사로서의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보았다.

결국 가처분 결정일인 2012. 11. 19.부터 피고회사를 대표할 적법한 권한이 있는 자는 위 X인바, X는 귀책사유 없이 원심의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공격방어방법을 제출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므로 원심의 판단은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고 판시하였다.

III. 검토
대법원은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에 대하여 강력한 효력을 부여해 왔다. 그 대표적 판례가 대법원 1992. 5. 12. 선고 92다5638 판결이다. 이에 따르면 “대표이사의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의 가처분이 이루어진 이상 그 후 대표이사가 해임되고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되었다 하더라도 가처분 결정이 취소되지 아니하는 한 직무대행자의 권한은 유효하게 존속하는 반면, 새로이 선임된 대표이사는 그 선임결의의 적법 여부에 관계없이 대표이사로서의 권한을 갖지 못한다.” 또한 이 가처분은 “그 성질상 당사자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효력을 미치므로, 새로이 선임된 대표이사가 위 가처분에 위반하여 회사 대표자의 자격에서 한 법률행위는 결국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무효이고 이때 가처분에 위반하여 대표권이 없는 대표이사와 법률행위를 한 거래상대방은 자신이 선의였음을 들어 위 법률행위의 유효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하여 (통상적인 가처분의 상대적 효력이 아닌) 절대적, 대세적 효력을 갖는다. 평석대상 판결은 기존의 판례 법리를 따르고 있다. 이 사안의 특이한 점은 가처분 결정 이후 법원의 촉탁으로 등기가 이루어지는 통상의 경우와 달리, 가처분 신청절차 진행 중에 대표이사가 변경되어 등기가 불가능하였다는 점에 있다. 나아가 이 판결은 선의의 제3자 보호방식에 관하여도 언급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 두 가지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 번째로 등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 가처분의 효력이 문제된다. 이에 대하여는 민사집행법 제306조의 신설에 의하여 가처분 등기는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의 집행방법이 되었고, 등기가 집행방법인 이상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의 효력이 발생하기 위하여는 가처분 결정의 피신청인에 대한 송달은 물론 가처분 등기까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었다. 이 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이러한 견해를 배척하면서 등기 이전에도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 선임 가처분은 절대적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로 제3자 보호 문제이다. 만약 가처분 등기가 경료되었다면 어떠할까? 이러한 경우에는 직무집행이 정지된 대표이사와 거래한 제3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선의였음을 주장하여 회사에 그 거래행위의 유효를 주장할 수 없다. 다만 위 92다5638판결이 표현대표이사 법리의 적용가능성까지 배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한편 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7다60455판결은 표현대표이사 책임과 직무집행정지가처분 등기 사이에 관련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하기도 하였으나, 대법원이 가처분 등기 이후 표현대표이사 성립을 일반적으로 부인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디 적법하게 선임되어 등기된 대표이사가 따로 있는 경우에도 표현대표이사 법리는 주장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의 흥미로운 점은 가처분 등기가 경료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대법원은 제3자 보호와 관련하여 상법 제37조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처분 등기가 경료되지 않았으므로, 이때의 제3자는 실제로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을 받았으나 등기부상으로는 여전히 대표이사인 자와 거래한 것이 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선의, 무중과실의 제3자는 표현대표이사 법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표현대표이사 법리와 상법 제37조 이하의 상업등기의 법리는 이른바 ‘이차원설(異次元說)’에 따라 별도로 검토되는바, 구체적으로 후자는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기존의 대표이사 선임 등기가 원인무효의 부실등기는 아니므로 상법 제39조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대법원은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가처분은 등기사항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상법 제37조 제1항, 즉 “등기할 사항은 이를 등기하지 아니하면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등기부상 대표이사와 거래한 선의(중과실인 경우 통상 악의로 취급됨)의 제3자는 회사에 그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 결국 대법원은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 결정에 등기유무를 불문하고 강력한 효력을 부여하면서, 특히 보호의 필요성이 높은 가처분 등기 미필시의 제3자 보호 문제는 상업등기에 관한 상법 제37조에 맡기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① 상법 제37조는 등기를 하여야 할 자의 귀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예컨대 등기공무원의 과실로 인해 등기가 경료되지 않은 경우에도 회사는 미등기에 따른 불이익을 입게 된다. 그러나 법원 예규 등에 의하여 등기가 불가능한 사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가? 이 사안에서는 가처분 신청당시의 등기 대표이사와 가처분 결정 당시의 등기 대표이사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처분 결정의 등기가 절차적으로 불가능했다. 가처분 결정이 회사등기부에 반영될 방법이 없는 상태라면 이러한 공백을 보완하지 않은 채 등기부와 실제간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을 회사에 돌리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이다. ② 이 사안에서 문제된 것은 일반적 거래행위가 아니라 소송행위이다. 만약 원고가 직무집행정지 등 가처분의 내용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대표이사 변경에 따른 회사등기부를 신뢰하여 당사자표시정정신청을 한 것이라면 어떠한가? 이러한 소송행위에 대하여 상법 제37조 제1항을 적용할 때 원고의 선의, 무중과실을 따져보아야 하는가? 대법원은 원고의 선의 여부를 언급함으로써 상법 제37조 제1항은 소송행위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사안에서 가처분 신청절차 중 새로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자 B 역시 해당 가처분의 공동 피신청인이었다. 만약 위 가처분 신청절차와 전혀 무관한 새로운 자가 대표이사가 선임된 것이라면 어떠하였을까? 이러한 자가 가처분 신청절차를 전혀 몰랐고 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 가처분 결정에 따른 직무대행자가 아니라 자신이 회사를 대표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사건 판결은 위 새로운 대표이사 B 역시 해당 가처분의 피신청인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으나,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의 대세효를 고려할 때 전혀 무관한 새로운 자라 하더라도 일단 가처분이 내려진 이상 대표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통상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의 본안사건은 이사를 선임한 주주총회결의를 다투는 소송 또는 이사해임의 소이다. 이러한 사건의 진행 중 적법한 재선임 절차에 의해 해당 이사가 교체되거나 사임한 경우 소의 이익이 없어져서 각하될 것이다(대법원 1991. 12. 13. 선고 90다카1158 판결 등). 마찬가지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사건의 진행 중 해당 대표이사가 적법하게 교체되고 가처분 법원에 그 사실이 통보되었다면, 가처분사건의 피보전권리가 인정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안은 원고 쪽이 가처분 사건의 심리 중에 임의로 대표이사를 교체하면서도 이를 가처분 법원에 알리지 않음으로써 가처분 결정의 효력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한 측면이 있다. 새로 취임한 대표이사가 아니라 직무대행자의 대표권을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시도를 저지한 대법원의 입장은 수긍할 점이 있다. 다만 이 판결의 취지대로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에 강력한 효력을 부여하려면 - 즉 가처분 등기 여부를 불문하고, 또한 가처분 결정 이전 또는 이후에 적법하게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되었다 하더라도 가처분이 우선함 - 회사 및 제3자의 절차적 관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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