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는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는 푯말이 있고, 변협 홈페이지엔 ‘변협은 항상 억울한 약자의 편이 되어 강자의 횡포를 막는데 선봉이 됨으로써 법과 인권을 수호하는 숭고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변협은 불필요한 국가권력과 부정부패에 저항하고 법치주의를 세우는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폼나는 축사 자리나 변호사들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면 변협은 대표적인 인권 옹호단체라고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변협 인권위원 4년, 인권이사 2년 동안 이런 말들이 실상과 너무 다른 것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2013년 가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가 사퇴하여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았는데 인권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사업이사가 겸임하다가 임기 만료 3주 전인 2015년 1월 초순 에야 인권이사를 선임한 것은 인권에 대한 비중을 한 눈에 가늠해 볼 수 있다.

2013년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최근 몇 십년 동안 가장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는데 변협은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규탄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2014년 봄, 4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변협에 공동개최를 제의한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의 문제점 개선’ 토론회나 법원 국제인권법 연구회에서 공동개최를 제안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점과 대체복무제 도입’ 토론회를 변협 명의로 개최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인권위원회 명의로 개최를 승낙하였다. 실정법을 해석하고 재판하는 고등법원도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효력을 정지하고 위헌제청까지 하였는데 변협은 성명은커녕 인권위원회 명의로 항의서한도 못 보내게 하였다.

많은 인권침해 사안은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발생하거나 법과 제도에 의한 것으로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국가 공권력의 불법, 남용에 대해서 비판 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변협은 인권 침해사건이 발생하면 여성아동, 장애자, 일제피해 등 의견 대립이 없는 사안은 물론이고 환경, 노동, 국정원, 쌍용자동차, 양심적 병역거부 등 견해가 대립되거나 정치와 관련 있는 사안일지라도 진상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분석하여 성명 발표, 토론회 개최, 입법 청원, 대안 제시 등 다양한 인권활동을 해야 한다. 변협은 지역, 종교, 직능, 정당, 선거 등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는 객관적인 인권옹호 단체로서 이런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적절한 대안이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변협의 역할이라고 본다. 시기가 적절한지, 여야 어느 쪽과 입장이 같은지,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지, 정치적인 문제인지 여부는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권옹호를 위한 활동에 장해가 될 수 없으며 적절한 절차와 방식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활동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 변협은 정치적이거나 민감한 사건, 견해가 대립되는 사건, 수사 및 판결, 인사 등까지 비판 대상이나 주제, 시기에 제한 없이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거나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비판 감시하고 인권옹호 활동을 활발히 하여 변협의 위상을 드높였던 것이다.

최근 대한변협 협회장 선거의 4명의 후보자들 공약 중 두 후보는 아예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한 후보의 인권은 변호사 인권이고, 인권이 언급된 후보도 구체적인 인권공약이 아니라 인권단체를 지원하겠다는 것에 불과하였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의 6명의 후보자들도 구체적인 인권공약이 있는 후보는 아무도 없고 대부분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인권을 언급한 후보도 구체적인 공약이 아니라 인권활동 강화나 지원하겠다는 것에 불과하였다. 이번에 당선된 대한변협 협회장이나 서울회 회장의 공약에 인권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많은 공약 중에 인권공약은커녕 인권이라는 말 한 마디 언급되지 않았다면 인권이 얼마나 소홀히 될지 예상되는 것이고, 이것이 변협 단체장들의 현 주소다.

위 두 선거 모두 최대 쟁점이 사법시험 존치였고, 사시존치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시출신의 청년 변호사들의 몰표를 받은 두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선된 회장들의 공약에 인권옹호 하나 없고 변협은 사시존치와 회원권익을 수호하기 위한 직능단체가 된 만큼 앞으로 변협이 인권옹호 단체이고 변호사의 사명이 인권옹호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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