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제1회 공판기일에서 검사의 공소사실 낭독 후에 공소사실의 인정여부를 밝혀야 한다. 이를 ‘공소사실 인부(어레인먼트, Arraignment)’라고 한다. 공소사실 인부 후에는 검사가 제출하는 수사증거서류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한다. 이를 ‘증거인부’라고 한다. 변호인은 제1회 공판기일 전에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하면서 공소사실과 수사증거서류에 대해 그 인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먼저,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다투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증거에 대해 모두 동의한다”고 한다. 다만,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증거를 ‘부동의’하는 경우가 있다. 공소사실과 무관하고 양형상 불리한 진술이 기재된 증거서류가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검사가 피고인을 보이스피싱의 사기사건으로 기소하면서 피고인의 마약 관련 조사 내용이 담긴 사법경찰관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이하 사경, 피신조서라 약칭)를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해당 피신조서에 대해 ‘내용부인’하여 증거로 사용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법 제312조 제3항). 또한 피고인이 뇌물을 받은 것은 인정하지만 뇌물을 먼저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뇌물수수사건에서, 피고인이 먼저 뇌물을 요구했다는 공동피고인의 진술이 기재된 검사 작성의 상피의자신문조서가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상피의자신문조서의 해당 내용을 특정하여 ‘부동의’하고 상피고인신문 또는 증인신문의 절차에서 반대신문을 하여 그 진술의 증명력을 탄핵하면 될 것이다. 사경 작성의 상피의자신문조서라면 ‘부동의(실질은 ‘내용부인’)’하여 해당 상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없애면 될 것이다(2003도7185, 2009도2865).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다투면서도 증거를 모두 동의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살인죄로 기소된 피고인이 야간에 자신의 집에 침입해 온 절도범을 때려 숨지게 한 후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경우와 같이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리고 숨지게 한 사실 등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지만 정당방위라는 위법성조각사유의 법리를 다투는 경우이다. 또는 사기죄로 기소된 피고인이 금원을 받은 사실과 그 명목 등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사기죄의 기망과 편취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실질적인 증거인부는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공소사실과 관련된 ‘불리한 증거’를 ‘부동의’ 하는 경우이다. 피고인이 증거서류를 ‘부동의’하는 방법은 해당 서류의 작성주체나 진술자 등에 따라 달라진다. 첫째, 사경이나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후 피의사실에 대해 묻고 피의자가 답한 내용을 기재한 피신조서에 대한 증거인부이다. 피신조서에 기재된 서명 날인이 피고인의 것이 아닌 경우에는 ‘형식적 진정성립 부인’이라 하고 피신조서에 기재된 서명 날인이 피고인의 것인 경우에는 ‘형식적 진정성립 인정’이라 한다. 피신조서에 기재된 문답 내용이 피고인이 수사를 받을 때 문답한 내용과 다르게 기재된 경우에는 ‘실질적 진정성립 부인’이라 하고 수사과정에서 문답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된 경우 ‘실질적 진정성립 인정’이라 한다. 형식적 진정성립과 실질적 진정성립 모두 인정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성립인정’이라고 하면 된다.

2007년 개정된 형소법은 형식적 진정성립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 실질적 진성성립은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법 제312조). 성립인부 후에는 임의성 인정여부를 밝힌다. 피신조서의 성립이 인정되더라도 피의자의 진술이 고문이나 폭행, 협박 등으로 인해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임의성 부인’, 자의로 진술한 경우에는 ‘임의성 인정’이라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사경 작성의 피신조서에 대해 1954년 형소법이 제정될 때부터 ‘내용부인’이라는 독특한 증거인부방식을 두고 있다. 내용부인은 피신조서의 내용이 실체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피의자가 수사를 받으면서 문답한 내용대로 조서에 기재되어 있고 서명 날인한 것도 맞지만, “사건 직후 조사를 받아 당황해서 또는 수사관의 추궁과 압박에 겁이 나서 범행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범행을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에 인부하는 방식이다. 사경 작성의 피신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

2007년 형소법 개정으로 피의자가 수사과정에서 스스로 작성한 진술서(내지 자술서)에 대해서도 피신조서와 같은 요건이 적용되므로 검사 단계에서의 진술서에 대해서는 성립인부, 임의성인부를, 사경단계에서의 진술서에 대해서는 성립인부, 임의성인부, 내용인부를 각각 밝히면 된다(법 제312조 제5항).

피해자, 목격자의 참고인진술조서와 진술서 등 나머지 증거서류에 대해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내용이면 ‘동의’하고, 불리한 내용이면 ‘부동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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