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교수로서 1년차 연수생들을 처음 면담했을 때 연수생 대부분은 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연수생들이 검찰 교수에게는 검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 판사 교수에게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연수생들 입장에서는 예의의 하나였다 - 당시에는 내 앞에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연수생들이 당돌하다고 느껴질 만큼 미래의 판사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판사의 언어로 판사의 업무를 가르치는 재판실무가 학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연수생 1000명 시대에 70%는 어쩔 수 없이 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구조맹(構造盲)이 아닌데도 이 현실을 2학기 시험이 끝나고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본 다음에야 깨달은 제자들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수의 독려가 한몫했다. 심지어 4학기 시험 때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희망을 주는 교수도 있었다.

당시 과거 5년간 통계를 내본 결과 4학기 시험으로 2학기 시험의 부진을 극복하고 임용권 또는 5대 법무법인 취업권으로 진입한 비율은 5%도 되지 않았다.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은 변호사가 될 수밖에 없는 700명의 연수생은 변호사시험 합격자 1500명과도 경쟁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연수생들에게 새로운 경쟁자 그룹은 모든 불행의 근원으로 보였다.

“교수님, 공부를 안 해서 사시 1차도 못 붙던 친구가 로스쿨 가더니 2학년 때 대형 로펌에 컨펌되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 로스쿨에 가지 못하고 정말 힘들게 공부해서 연수원에 왔는데, 취업이 안 돼서 개업을 해야 돼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당시 법전원 1기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매한가지였다. 1500명의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배출되는 상황에서 고용변호사 자리와 재판연구원, 검사 임용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많은 법전원 학생들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전교 1등 또는 과 수석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내가 C+를 주었을 때 당혹해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 학생들과 저녁 자리를 하다가 그대로 기숙사로 들여보낼 수가 없어 2차를 가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 모임에서는 웃다가도 미래를 이야기하면 금방 울 것 같은 슬픈 눈빛으로 돌아갔던 그 학생들은 법조의 구조물 앞에 그저 치일 수밖에 없는 미물이었다. 그리고 혼자 남았을 때 찾아오는 처절한 패배감, 실존적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연수원, 법전원의 이런 제자들에게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변호사의 꿈, 희망, 성취’였다. 변호사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의 비전을 이야기하려니 참 못할 노릇이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가 경쟁시스템에서 한발 떨어져 세상을 보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법조인이 하나의 잣대로 줄서기를 했던 연수원체제의 문제점도 절감하기는 했지만, 우선은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겪는 패배감, 자신감 상실을 두고 볼 수 없어 시작한 말이었다.

그러나 실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일이 연수원 교육체계를 변호사교육 중심으로 바꾸고, 새로운 창의성을 가진 변호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변호사 직역확대를 꾀하는 것이었다. 경쟁에서 뒤쳐진 변호사들이 무엇을 찾을지는 모르지만,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는 해야 했다. 그러나 시작했던 사업 대부분이 간단치 않고, 일부는 실패로 끝난 것을 확인했을 무렵 연수원을 수료하게 된 제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결국 너희들 각자의 몫이 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경쟁시스템에서 한발 떨어져보기를 ‘달관’이라고는 표현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포기, 절망’이라는 단어로 미래를 회색빛으로 만드는 제자들이 보기 싫어 ‘한발 비켜나기’라고 했던 것 같다.

지난 2월 말 한 일간지에서 ‘달관세대’를 기획보도한 후 ‘달관족’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넷이 뜨거웠다. 작명한 기자에 따르면 대기업 취업, 승진 등 경쟁에서 벗어나 소소한 재미에 행복을 느끼는, 안분지족을 깨달은 20~30대가 달관세대라는 것이다. 이들 달관족에 대해, 그들 가운데 스티브 잡스가 나올 것이라는 견해부터 노동의 소외 현상이라는 의견, ‘절망’을 ‘달관’이라고 포장한 기만적 프레임이라는 의견까지 있었다.

사람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야 깨달음을 얻어 달관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절망, 포기보다는 ‘한발 비켜나기’가 훨씬 낫다. 그러나 암울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서는 “지금이 그래도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하는 것이 달관은 아닐 것이다. 달관하지 못한 어른들이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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