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간접경험을 하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직업보다 매력적이다. 특히,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므로,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려운 법률적인 문제로 괴로워하거나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한가로운 오후에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의 느낌과는 분명히 다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잘 들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격하게 공감하거나, 함께 분개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변론 방향을 놓고 고성이 오고 갈 정도로 의견충돌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 7년 차에 접어들면서 온종일 의뢰인들과 입씨름을 하고, 교도소에서 십여명이 넘는 피고인들을 만나서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머리 회전이 멈추고, 극심한 현기증과 함께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한꺼번에 모조리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렇게 한 마디도 뱉을 힘이 없는 무기력 상태가 되면,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기록과 씨름을 하는 것은 무리이다.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의 기운을 충전시켜야만 한다. 쉴 休, 숨 쉴 息. 일을 쉬고, 숨을 쉬는 휴식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피로를 풀기 위하여 휴일에 집안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쉬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나는 어김없이 사진기를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집을 나선다.

오래 전, 신진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한데 모아놓은 전시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몽환적인 분위기의 자연 풍경을 찍은 한장의 사진을 보고, 지친 마음이 한없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그 뒤로 사진을 찍는 것과 그 사진을 찍기 위하여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는 것에 재미가 붙었고,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나는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을 때면, 이름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출사(出寫)를 떠난다.

처음 출사를 떠날 때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기에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컸고, 경쟁하듯 사진을 찍었지만, 요즘은 멋진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그냥 사진을 찍으러 ‘그곳’에 가는 것이 좋다. ‘그곳’에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큰 안도감을 느낀다. 목적지가 거창할 필요도 없고, 특별히 사진이 잘 나오는 뷰 포인트에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운이 좋아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풍경을 만나고, 그 풍경을 고스란히 사진기에 담는 행운까지 따른다면, 한주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슬슬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진다. 그럴 때는 스마트폰으로 인근의 맛집을 검색해서 배를 채우기도 하지만, 나는 근처에 있는 이름 없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그곳의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다. 가끔씩 우연히 들어간 허름한 식당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놀라운 맛의 음식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렇게 나만 알고 있는 맛집을 하나둘씩 발견하는 재미도 출사의 또 다른 즐거움이며, 기쁨이다.

출사의 가장 큰 매력은 사진을 찍으면서 조용히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사 후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찍는 사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주로 탁 트인 풍경이나 하늘, 한가로이 떠 있는 구름 사진이 많고, 기분이 좋을 때는 유독 아이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다.

특히 유난히 찍은 사진이 없는 날도 있는데, 이때는 마음이 무척 우울한 경우이다. 그날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날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복잡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불현듯 얻기도 하고, 가득 차 넘치던 마음의 짐들이 조금씩 비워져서 평온한 마음에 이르기도 한다. 결국,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서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뷰파인더를 통해 온전히 나를 보고,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비워내며, 일을 쉬고, 숨을 쉰다.

바야흐로 꽃피는 봄이다. 이번주에는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어딘가로 가보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사진을 찍게 될지, 그리고 어떤 나와 만나게 될지, 지금의 나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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